통합 요약노트

Ch.7 조선시대 (후기)

환국·탕평·실학·세도정치·서민문화

이 챕터의 내용

1

예송논쟁

서인의 1년복과 남인의 3년복 — 상복 기간 뒤에 숨은 왕권과 신권의 대결을 따라갑니다.

상복 몇 년 입느냐가 왜 정치 싸움이 되었을까?

조선 후기, '예송'이란 예(禮)를 둘러싼 논쟁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상복 기간을 놓고 싸운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왕권 대 신권의 대결이었습니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합니다. 핵심 변수는 효종이 인조의 둘째 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원래 왕세자였던 소현세자가 먼저 죽고, 동생인 효종이 왕위를 이어받았거든요.

  • 본질: 왕권(남인) vs 신권(서인)의 대결
  • 기해예송(1659) = 서인 승, 갑인예송(1674) = 남인 승
  • 갑인예송 이후 남인 집권 → 경신환국(1680)으로 서인 복귀
  • 예송논쟁 = 붕당정치 변질의 시작점
  • 예송논쟁의 본질 = 왕권(남인) vs 신권(서인)
  • 기해예송(1659) = 서인 승 · 갑인예송(1674) = 남인 승
  • 송시열 = 주자가례/신권, 허목·윤휴 = 고례·경전/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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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신환국과 노론·소론 분화

경신환국과 회니시비 — 환국정치의 시작과 서인의 분열을 따라갑니다.

어제의 권력자가 오늘의 죄인이 되다

환국(換局)이란 집권 세력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정치 현상입니다. 붕당정치 초기에는 여당과 야당이 공존하며 견제했는데, 이제는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통째로 쫓겨나게 됩니다.

환국정치의 숨은 주인공은 당파가 아니라 숙종입니다. 숙종은 일부러 당파를 갈아치우며 '너희 권력은 내가 줬다, 내가 빼앗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환국이라는 정치 패턴이 확립됨
  •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분화하는 계기
  • 붕당정치의 변질이 본격화
  • 이후 기사환국(1689) → 갑술환국(1694)으로 이어짐
  • 경신환국(1680) = 허견 역모 → 남인 축출, 서인 복귀
  • 회니시비: 송시열(노론) vs 윤증(소론)의 분열
  • 환국정치 = 숙종 주도의 전면적 정권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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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 정확히 거울상인 두 환국을 비교합니다.

원자 책봉이라는 도화선에 불이 붙다

1688년, 후궁 장희빈이 아들(후일의 경종)을 낳습니다. 숙종은 즉시 원자로 책봉하려 하지만, 서인(특히 노론 송시열)이 반대합니다 — '인현왕후가 아직 젊으니 기다려보자.'

1689년, 격노한 숙종은 서인을 일거에 축출하고 남인을 불러들입니다. 이것이 기사환국입니다.

  • 정치 안정성 파괴 — 5~10년 단위 정권 뒤집힘
  • 패배 = 죽음 → 타협 불가능한 정쟁
  • 숙종의 왕권은 강화, 그러나 붕당정치의 장점 소멸
  • 이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 영조의 탕평책 등장
  • 기사환국(1689) = 서인 축출 + 인현 폐위 + 송시열 사사
  • 갑술환국(1694) = 남인 축출 + 인현 복위 + 장희빈 강등
  • 환국 순서: 경신(1680) → 기사(1689) → 갑술(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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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조의 탕평책

완론탕평과 균역법 — 영조의 개혁과 비극을 따라갑니다.

당파 싸움 좀 그만하자! 콤플렉스의 왕이 외치다

영조(재위 1724~1776)는 조선 최장 52년 재위 왕입니다. 어머니가 숙빈 최씨(무수리 출신)이었고, 형 경종 독살 의혹까지 있어 평생 정통성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습니다.

영조의 탕평은 완론탕평 — 각 당파의 온건파(완론)를 중심으로 조정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강경파를 배제하고 타협 가능한 사람들끼리 함께 일하게 한 것입니다.

  • 실제로는 노론 우세 유지 — 완전한 균형이 아님
  • 탕평이 왕의 의지에 의존 → 왕이 바뀌면 흔들림
  • 강경파의 불만 누적
  • 사도세자 사건으로 노론 내부까지 분열
  • 영조 = 완론탕평 + 균역법(2→1필) + 속대전 + 탕평비(성균관)
  • 이인좌의 난(1728) = 소론·남인 강경파 반란
  • 임오화변(1762) = 사도세자 → 벽파·시파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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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조의 개혁 정치

규장각과 수원 화성 — 정조의 야심찬 개혁을 따라갑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능력으로 인재를 뽑겠다

정조(재위 1776~1800)의 탕평은 준론탕평 —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려 능력 있는 사람을 쓰겠다는 원칙입니다. 소론·남인도 적극 등용했습니다.

정조는 규장각(1776)을 세웁니다. 겉으로는 왕실 도서관이지만, 진짜 목적은 정책 연구 기관 + 친위 세력 양성소입니다. 정약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서얼 출신 학자도 검서관으로 등용했습니다.

  • 인사: 준론탕평 (시시비비 가려 등용)
  • 학술: 규장각 + 초계문신제(37세 이하)
  • 군사: 장용영(내영+외영)
  • 경제: 신해통공(금난전권 폐지)
  • 신분: 서얼허통
  • 법률: 대전통편 · 문화: 문체반정
  • 정조 = 준론탕평 + 규장각 + 초계문신제 + 장용영 + 수원 화성
  • 신해통공(1791) = 금난전권 폐지, 서얼허통 = 서얼 관직 허용
  • 영조=속대전/균역법, 정조=대전통편/신해통공 — 반드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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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임오화변과 시파·벽파

임오화변에서 세도정치까지 — 뒤주의 비극이 시파·벽파를 낳고, 정조 사후 벽파가 집권하여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따라갑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아버지와 그 기대를 감당하지 못한 아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입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지만 무예를 좋아했고, 학문형 세자를 원했던 영조의 기대와 어긋났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으나, 세자는 노론 세력과 충돌합니다.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받았고, 사도세자는 소론·남인과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 임오화변(1762) = 영조 때 사건, 사도세자 뒤주 사사
  • 시파(동정·정조지지) vs 벽파(정당·정조견제)
  • 정조 사후 → 벽파 집권 → 신유박해 → 세도정치(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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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실학 — 중농학파

균전론·한전론·여전론 — 세 학자가 같은 문제에 다른 처방을 내렸습니다. 학자-저서-토지론 3단 매칭을 따라갑니다.

공허한 논쟁을 접고 현실의 땅을 밟다

조선 후기, 성리학이 교조화됩니다. 현실 문제는 산더미인데 학자들은 이기론·예송 논쟁만 이어갔습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나라가 엉망인데 기존 학문이 답을 주지 못하자, '진짜 쓸모 있는 학문을 하자!' — 이것이 실학의 출발점입니다.

  • 유형원 = 반계수록 = 균전론(균등 분배)
  • 이익 = 성호사설 = 한전론(소유 상한선) + 6좌절
  • 정약용 =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여전론(공동 경작) + 거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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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실학 — 중상학파(북학파)

홍대용·박지원·박제가 — 세 선비가 청나라에서 미래를 배워오자 외쳤습니다. 각각의 저서와 핵심 주장을 따라갑니다.

연경의 벽돌 거리를 걸으며 조선의 미래를 그리다

중상학파는 북학파라고도 불립니다. '북학'은 북쪽(= 청나라)에서 배우자는 뜻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조선 지식인은 '청나라는 오랑캐'라는 태도였지만, 북학파 학자들은 직접 청에 가서 선진 문물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 홍대용 = 의산문답 = 지전설 + 화이론 부정
  • 박지원 = 열하일기 = 양반전·허생전·호질
  • 박제가 = 북학의 = 소비촉진론 + 규장각 검서관
  • 경세치용 = 중농 / 이용후생 = 중상(북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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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동법

방납 폐단 → 수미법 → 대동법 → 공인 등장 — 조선 후기 가장 중요한 세금 개혁의 100년 대장정을 따라갑니다.

꿀 한 항아리 값이 쌀 50말이 되는 세상

조선의 세금 체계 중 공납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가구(호) 단위로 바치는 것입니다. 땅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같은 부담을 졌습니다.

문제는 방납입니다. 중간상인이 백성 대신 공물을 납부하고 원래 값의 수십 배를 뜯어갔습니다. 관리들이 방납업자와 결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 방납 폐단 → 이이 수미법(미실현) → 이원익 건의
  • 시작: 광해군(경기도 1608) → 완성: 숙종(전국 1708)
  • 핵심 변화: 호→결 기준, 1결당 12두, 선혜청
  • 공인 등장 → 상품화폐경제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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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균역법과 상평통보

황구첨정·백골징포의 참상에서 균역법까지 — 그리고 대동법이 만든 시장에 상평통보가 돌기 시작합니다.

아기에게 군포 내라 하고 죽은 자에게도 징수하다

조선 후기, 양인 남자(16~60세)는 연간 군포 2필을 납부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양반은 군역 면제라는 것입니다.

황구첨정 = 어린아이 · 백골징포 = 죽은 사람

  • 균역법 = 영조(1750), 군포 2필→1필, 결작(1결 2두), 균역청
  • 호포론(미채택) vs 감필론(채택) — 양반 군역 면제 유지
  • 상평통보: 주조=인조, 전국유통=숙종, 폐단=전황
  • 3대 수취개혁: 영정법(전세) · 대동법(공납) · 균역법(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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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상의 성장과 상업 발달

신해통공으로 자유 경쟁의 문이 열리고, 4대 사상이 조선의 상업 지도를 새로 그립니다.

억상에서 상업 폭발로 조선 경제가 뒤집히다

조선 전기에는 농본억상 정책으로 상업을 억제했습니다. 한양에는 관허 상점인 시전만 허용되었고, 가장 큰 여섯 곳을 육의전이라 불렀습니다.

시전 상인에게는 금난전권 — 다른 상인의 영업을 금지할 수 있는 독점 판매권이 주어졌습니다. 허가 없이 장사하는 가게를 '난전'이라 하고, 이를 금하는 권리였습니다.

  • 4대 사상: 경강(한강·쌀), 만상(의주·대청), 송상(개성·인삼·복식부기), 내상(동래·대일)
  • 장시 = 5일장, 18세기 1000여 개 / 보상(보자기) vs 부상(등짐)
  • 신해통공 = 정조, 1791년, 육의전 외 금난전권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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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농업과 수공업의 변화

이앙법-광작-부농의 연쇄 변화를 시작으로, 선대제와 설점수세제가 조선 경제의 근대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모내기 하나로 농업 전체가 뒤집히다

이앙법은 모판에서 모를 키운 뒤 논에 옮겨 심는 농법입니다. 직파법보다 잡초 관리가 쉽고, 핵심 장점은 노동력 절감이었습니다.

원래 나라에서 금지했습니다. 이앙법은 가뭄에 취약해서 모내기를 못 하면 그해 농사를 통째로 망치기 때문이죠. 그러나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확산시켜 17세기 이후 전국에 보급되었습니다.

  • 이앙법 → 노동력 절감 → 광작 → 부농 + 임노동자 분화
  • 수공업: 관영→민영, 선대제(상인→장인 원료 선대)
  • 광업: 설점수세제(민간 채굴 허용) + 덕대(광산 전문 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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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도정치와 삼정문란

세도정치 → 매관매직 → 삼정문란 — 이 악순환이 홍경래의 난과 임술봉기의 불씨가 됩니다.

정조의 죽음 이후 60년의 암흑이 시작되다

1800년, 정조가 죽고 11살 순조가 즉위합니다. 순조의 장인 김조순(안동 김씨)이 비변사를 장악하면서 세도정치가 시작됩니다.

철종은 '강화도령' —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왕족을 안동 김씨가 일부러 데려온 허수아비 왕이었습니다. 세도정치는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즉위시킨 1863년에 종식됩니다.

  • 세도정치(1800~1863): 순조·철종 = 안동 김씨, 헌종 = 풍양 조씨
  • 삼정문란: 전정(은결·황폐지 과세), 군정(백골징포·황구첨정), 환곡(고리대·강제 분급)
  • 매관매직 → 세금 과다 징수 → 삼정문란 → 민란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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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홍경래의 난과 임술농민봉기

홍경래(1811, 지역적)→ 임술봉기(1862, 전국적)→ 동학(1894, 조직적) — 민란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잡습니다.

평안도의 분노가 마침내 터지다

1811년, 순조 때. 홍경래는 평안도 출신 몰락 양반으로, 서북 지역 차별세도정치 불만이 폭발의 배경이었습니다.

몰락 양반, 부유한 상인(우군칙), 광산 노동자, 농민까지 — 여러 계층이 연합한 반란이었습니다. 가산에서 시작해 평안도 청천강 이북을 장악합니다.

  • 홍경래(1811, 순조, 평안도, 정주성 5개월, 몰락 양반 주도)
  • 임술봉기(1862, 철종, 진주→전국 70여 군현, 농민 주도, 백낙신)
  • 삼정이정청 = 임술봉기 후 설치 / 민란 발전: 홍경래→임술→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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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서민문화의 발달

홍길동전에서 판소리, 탈춤, 민화까지 —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 서민문화의 현장으로 갑니다.

한글로 읽고 양반을 웃기다

서민문화 발달의 배경은 상업 발달(경제력 향상), 한글 보급(문해력 상승), 신분제 동요(양반-서민 경계 흐려짐) 세 가지입니다.

유통은 세책가(소설 대여점)와 방각본(나무판 대량 인쇄 상업 출판물)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 홍길동전 = 허균 = 최초의 한글소설 / 박지원 = 열하일기·양반전
  • 판소리 5마당(춘심흥수적), 신재효 = 이론화·정리 (명창 아님)
  • 봉산탈춤 = 황해도, 양주별산대 = 경기도 / 서민문화 = 풍자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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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풍속화와 진경산수화

정선의 진경산수화, 김홍도의 서민 풍속화, 신윤복의 여성 풍속화 — 세 화가의 붓끝을 따라 조선 후기 미술의 대전환을 만납니다.

중국풍을 버리고 우리 것을 그리다

조선 전기의 그림은 중국 화법을 따랐습니다. 산수화조차 중국 산천을 상상으로 그렸죠.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우리 것을 그리자!'는 의식이 생겨납니다. 산수화는 진경산수화(실제 풍경)로, 인물화는 풍속화(서민 생활)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진경산수화 = 정선(겸재): 인왕제색도 + 금강전도
  • 풍속화 양대 산맥: 김홍도(단원·서민) vs 신윤복(혜원·여성)
  • 민화 = 무명 화가 · 백자(청화백자·달항아리) = 조선 후기
  • 세한도 = 김정희(추사) · 추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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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천주교 전래와 박해

이승훈의 최초 영세에서 병인박해의 대학살까지 — 5대 박해의 원인과 핵심 인물을 하나로 꿰뚫어 봅니다.

선교사 없이 스스로 받아들이다

17세기부터 중국에 가는 사신들이 천주교 서적을 가져왔지만, 처음에는 학문적 호기심(서학)에 그쳤습니다.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옵니다. 이것이 조선인 최초의 영세이며, 선교사 전파가 아닌 자발적 수용이라는 점이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핵심입니다.

  • 천주교 전래 = 자발적 수용(1784 이승훈 영세)
  • 탄압 원인 = 제사 거부 + 신분제 부정
  • 5대 박해: 신해(1791) → 신유(1801) → 기해(1839) → 병오(1846) → 병인(1866)
  • 병인박해 → 병인양요(프랑스 강화도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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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동학 창시와 전개

최제우의 시천주최시형의 인내천손병희의 천도교 — 동학의 탄생부터 근대 민족운동까지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서학에 맞서 동쪽의 학문을 세우다

1860년, 안으로는 세도정치와 삼정문란, 밖으로는 서양 세력 침투와 천주교 확산. 이 위기 속에서 경주의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합니다.

시천주 =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모든 사람 안에 하늘이 있으니 양반이든 노비든 여성이든 평등하다는 혁명적 사상이었습니다.

  • 동학 1860 = 최제우 = 시천주 = 유불도 융합
  • 시천주(최제우) vs 인내천(최시형) — 절대 바꾸지 말 것!
  • 동경대전=한문, 용담유사=한글
  • 손병희 = 천도교(1905) = 3·1운동 민족대표 3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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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시험특강] 실학자 완전 비교

유형원·이익·정약용의 토지 개혁 vs 박지원·박제가·홍대용의 상공업 진흥 — 실학자 완전 비교표를 완성합니다.

땅을 바꾸면 나라가 바뀐다

중농학파(경세치용)는 토지 제도 개혁이 먼저라고 봤습니다. 세 실학자가 각각 다른 토지 개혁안을 제시합니다.

균전론=유형원 · 한전론=이익 · 여전론=정약용

  • 중농(경세치용) = 유형원·이익·정약용 → 토지 개혁
  • 중상(이용후생/북학파) = 박지원·박제가·홍대용 → 상공업·기술
  • 저술-인물 매칭이 시험의 핵심: 반계수록·성호사설·열하일기·북학의·의산문답
  • 균전론-한전론-여전론 구분: 국가 분배 / 상한선 / 공동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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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험특강] 수취체제 변천 총정리

영정법(인조) · 대동법(광해군~숙종) · 균역법(영조) — 수취체제 개혁의 전 과정을 한눈에 정리합니다.

나라가 거둬가는 세 가지 세금

전세=토지세 · 공납=특산물 · 역=노동력/군포

수조권에서 관수관급제까지

  • 영정법(인조 1635) = 전세 4두 고정
  • 대동법(광해군~숙종 1608~1708) = 공납 → 쌀 12두 → 공인 등장
  • 균역법(영조 1750) = 군포 2필→1필, 결작 2두
  • 토지: 과전법→직전법(세조)→관수관급제(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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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용어 모음

서인 대표

송시열, 송준길

남인 대표

허목, 윤휴

서인 주장

1년복 (차남 = 신권)

남인 주장

3년복 (왕 = 왕권)

1차 기해예송(1659)

효종 사망 → 서인 승(1년복)

2차 갑인예송(1674)

인선왕후 사망 → 남인 승(1년복)

정국 변화

갑인예송 후 남인 집권, 서인 축출

송시열(서인)

주자가례 정통 해석 → 종법 절대시

허목(남인)

고례(古禮) 근거 → 왕실 별도 예법

윤휴(남인)

경전 직접 해석 → 독자적 학문 태도

연도

1680년

계기

허견(허적의 아들) 역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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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정리

항목시파벽파
사도세자 입장동정적 (죽음은 부당)비판적 (처분은 정당)
정조에 대한 태도지지견제
주요 구성남인 + 소론 + 노론 일부노론 강경파
항목중농학파중상학파
별칭경세치용학파이용후생학파 (북학파)
핵심 주장토지 개혁 (균전·한전·여전)상공업 육성, 청 문물 수용
대표 저서반계수록 · 성호사설 · 목민심서의산문답 · 열하일기 · 북학의
항목대동법영정법
개혁 대상공납전세(조세)
시행 왕광해군~숙종인조
세율1결당 12두1결당 4두
관련 기구선혜청없음
항목대동법균역법
개혁 대상공납군역
시행 왕광해군~숙종영조
관련 기구선혜청균역청
결 기준 세율1결당 12두결작 1결당 2두 (보충재원)
항목분야핵심 키워드
농업이앙법 → 광작 → 부농 + 임노동자상품작물(면화·담배·인삼)
수공업관영 → 민영선대제 (상인→장인 원료 선대)
광업설점수세제 (민간 채굴 허용)덕대 (광산 전문 경영인)
항목탕평정치세도정치
시기영조·정조순조·헌종·철종
권력 주체왕 (왕권 강화)외척 가문 (왕권 약화)
인재 등용능력 중심연줄·뇌물(매관매직)
항목홍경래의 난임술농민봉기
시기 / 왕1811년 / 순조1862년 / 철종
지역평안도 (서북 지방)진주 → 전국 70여 군현
주도층 / 원인몰락 양반 / 지역 차별 + 세도정치농민 / 삼정문란 + 탐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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