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7 조선시대 (후기)

예송논쟁

예송논쟁의 본질이 왕권 대 신권의 대립임을 이해한다기해예송과 갑인예송의 쟁점·결과·정치적 의미를 구분한다서인과 남인의 복상 주장과 그 논리를 비교한다

상복 한 벌 때문에 나라가 둘로 갈라지다

1659년, 효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느냐 — 겉으로는 예법 논쟁이었지만, 그 안에는 왕의 지위를 둘러싼 서인과 남인의 생사를 건 권력 투쟁이 숨어 있었습니다.

왕은 일반 사대부와 같은가, 다른가?

서인의 1년복과 남인의 3년복 — 상복 기간 뒤에 숨은 왕권과 신권의 대결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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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상복 몇 년 입느냐가 왜 정치 싸움이 되었을까?

조선 후기, '예송'이란 예(禮)를 둘러싼 논쟁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상복 기간을 놓고 싸운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왕권 대 신권의 대결이었습니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합니다. 핵심 변수는 효종이 인조의 둘째 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원래 왕세자였던 소현세자가 먼저 죽고, 동생인 효종이 왕위를 이어받았거든요.

시험 포인트 * 예송논쟁의 본질 = 왕권 vs 신권 논쟁 * 효종은 인조의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다 *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인조의 두 번째 왕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느냐가 쟁점

예송논쟁의 본질 = 왕권 vs 신권

차남이냐 왕이냐 해석이 갈라지다

서인(송시열, 송준길)은 주장합니다 — '효종은 종법상 차남이다. 왕이라 해도 예법의 예외는 없다. 자의대비는 1년복을 입어야 한다.' 이것은 곧 신권 강화 논리입니다.

반대로 남인(허목, 윤휴)은 주장합니다 — '효종은 왕위를 계승한 순간 장자의 지위를 얻는다. 왕실 예법은 사대부와 다르다. 자의대비는 3년복을 입어야 한다.' 이것은 왕권 강화 논리입니다.

서인 = 1년복 = 신권 · 남인 = 3년복 = 왕권

15년의 세월을 두고 두 번의 뒤집기가 벌어지다

1659년 기해예송(1차) — 당시 집권 세력은 서인. 서인의 주장대로 자의대비가 1년복을 입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서인 승리.

1674년 갑인예송(2차) — 이번에는 효종비 인선왕후가 사망합니다. 현종이 직접 나서 남인의 손을 들어줍니다. 남인 승리. 서인이 대거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합니다.

시험 포인트 * 기해(1659) = 서인 승 · 갑인(1674) = 남인 승 — 절대 반대로 외우면 안 된다 * 2차 예송의 대상은 효종이 아니라 효종비(인선왕후) * 예송논쟁은 붕당정치 변질의 시작점이며, 환국정치의 전조가 된다

기해 = 서인 승 · 갑인 = 남인 승

주자가례 한 권이 나라의 운명을 가르다

서인의 송시열은 주자가례를 절대 기준으로 삼아 종법 질서를 지키려 했습니다. 반면 남인의 허목은 고례(옛 예법)를 근거로 왕에게는 별도의 예법이 있다고 주장했고, 윤휴는 경전을 직접 해석하여 독자적 논증을 펼쳤습니다.

기해예송(1659)에서 남인이 승리하여 3년복이 결정되었다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효종의 복상 기간으로 주장한 것은?

예송논쟁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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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용어

서인 대표

송시열, 송준길

남인 대표

허목, 윤휴

서인 주장

1년복 (차남 = 신권)

남인 주장

3년복 (왕 = 왕권)

1차 기해예송(1659)

효종 사망 → 서인 승(1년복)

2차 갑인예송(1674)

인선왕후 사망 → 남인 승(1년복)

정국 변화

갑인예송 후 남인 집권, 서인 축출

송시열(서인)

주자가례 정통 해석 → 종법 절대시

허목(남인)

고례(古禮) 근거 → 왕실 별도 예법

윤휴(남인)

경전 직접 해석 → 독자적 학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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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노트

예송논쟁 완전 정리

핵심 구도

논쟁 본질
왕권(남인) vs 신권(서인) — 상복이 아닌 권력 다툼
서인 주장
1년복 — 효종은 차남(종법), 신권 강화 (대표: 송시열)
남인 주장
3년복 — 왕은 별도 예법, 왕권 강화 (대표: 허목·윤휴)

두 차례 예송

기해예송(1659)
효종 사망 → 서인 승 → 1년복 결정
갑인예송(1674)
인선왕후 사망 → 남인 승 → 남인 집권

기해 = 서인 승 · 갑인 = 남인 승 — 절대 반대로 외우면 안 됨! 2차 예송의 대상은 효종이 아니라 효종비(인선왕후)임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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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1본질: 왕권(남인) vs 신권(서인)의 대결
  • 2기해예송(1659) = 서인 승, 갑인예송(1674) = 남인 승
  • 3갑인예송 이후 남인 집권 → 경신환국(1680)으로 서인 복귀
  • 4예송논쟁 = 붕당정치 변질의 시작점
  • 5예송논쟁의 본질 = 왕권(남인) vs 신권(서인)
  • 6기해예송(1659) = 서인 승 · 갑인예송(1674) = 남인 승
  • 7송시열 = 주자가례/신권, 허목·윤휴 = 고례·경전/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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