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7 조선시대 (후기)
경신환국과 노론·소론 분화
한 방에 정권이 뒤집히는 시대가 열리다
갑인예송 이후 남인이 집권했지만, 6년 뒤 허견의 역모 사건이 터지면서 숙종은 단칼에 남인을 축출합니다. 복귀한 서인은 내부에서 또 쪼개집니다.
스승과 제자의 결별이 조선을 어떻게 바꿨는가?
경신환국과 회니시비 — 환국정치의 시작과 서인의 분열을 따라갑니다.
핵심 내용
어제의 권력자가 오늘의 죄인이 되다
환국(換局)이란 집권 세력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정치 현상입니다. 붕당정치 초기에는 여당과 야당이 공존하며 견제했는데, 이제는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통째로 쫓겨나게 됩니다.
환국정치의 숨은 주인공은 당파가 아니라 숙종입니다. 숙종은 일부러 당파를 갈아치우며 '너희 권력은 내가 줬다, 내가 빼앗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시험 포인트 * 환국 = 집권 정파가 한꺼번에 교체되는 정치 현상 * 붕당정치의 변질된 형태로 평가 * 환국은 신하들끼리 싸운 것이 아니라 숙종이 주도한 정치적 결단
환국 = 숙종 주도의 전면적 정권 교체
허견의 역모 한 건이 남인을 통째로 무너뜨리다
1680년, 허적의 아들 허견이 역모를 꾀했다는 고변이 들어옵니다. 숙종은 전격적으로 정국을 뒤집습니다 — 이것이 경신환국입니다.
허적은 사사, 허견은 처형, 윤휴도 사사. 남인이 통째로 축출되고 서인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경신환국(1680) = 남인 축출 + 서인 복귀
스승과 제자가 갈라서고 서인이 둘로 쪼개지다
서인이 복귀한 후, 남인을 얼마나 강하게 처벌할 것인가를 놓고 내부 의견이 갈립니다. 여기에 회니시비가 결정타를 날립니다.
회니시비 — 회덕의 송시열(스승)과 이산의 윤증(제자) 사이의 갈등.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에 대한 송시열의 비판이 계기가 되어 스승과 제자가 결별합니다.
동인: 남인(이황 학맥) + 북인(조식 학맥)
서인: 노론(송시열) + 소론(윤증)
북인: 인조반정 후 사실상 소멸
송시열과 윤증 그리고 환국이 남긴 것
송시열(우암) — 서인/노론의 정신적 지주 * 주자학 정통 해석자 * 예송논쟁에서 1년복 주장 * 효종에게 북벌론 건의 * 기사환국(1689)에서 사사(다음 레슨)
윤증(명재) — 소론의 정신적 지주 * 상대적으로 유연한 학문 태도 * 온건·포용적 정치 노선 * 재야에 머물며 영향력 행사
환국정치에서 왕권이 약화되었다
경신환국의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은?
경신환국과 노론·소론 완료!
핵심 용어
연도
1680년
계기
허견(허적의 아들) 역모 사건
결과
남인 축출, 서인 집권
주도자
숙종
노론(老論)
송시열 중심 · 강경 처벌 · 원로파
소론(少論)
윤증 중심 · 온건 처벌 · 소장파
이름 유래
老(늙은)=원로, 少(젊은)=소장
기억법
스승이 노(老)인이니까 노론
정리 노트
환국정치와 노론·소론 분화
경신환국(1680)
- 계기
- 허견(허적의 아들)의 역모 사건
- 결과
- 남인 축출 → 서인 복귀
- 주도
- 숙종 주도 — 왕권 강화 목적
노론·소론 분화
- 원인
- 회니시비 — 송시열(스승)과 윤증(제자)의 결별
- 노론
- 송시열 중심 · 강경 처벌 · 원로파
- 소론
- 윤증 중심 · 온건 처벌 · 소장파
환국 = 집권 정파가 한꺼번에 교체되는 현상 (숙종이 주도, 왕권 강화) 환국 순서: 경신(1680) → 기사(1689) → 갑술(1694) = '경기갑'으로 암기
핵심 정리
- 1환국이라는 정치 패턴이 확립됨
- 2서인이 노론·소론으로 분화하는 계기
- 3붕당정치의 변질이 본격화
- 4이후 기사환국(1689) → 갑술환국(1694)으로 이어짐
- 5경신환국(1680) = 허견 역모 → 남인 축출, 서인 복귀
- 6회니시비: 송시열(노론) vs 윤증(소론)의 분열
- 7환국정치 = 숙종 주도의 전면적 정권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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