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7 조선시대 (후기)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장희빈과 인현왕후 왕비 자리를 둘러싼 정치 전쟁
숙종의 후궁 장희빈이 아들을 낳자 정치판이 뒤집어집니다. 원자 책봉을 둘러싸고 서인이 축출되고, 5년 뒤 또다시 남인이 쫓겨나는 피의 순환이 반복됩니다.
왕비 한 명이 바뀔 때마다 조정 전체가 뒤바뀌는 시대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 정확히 거울상인 두 환국을 비교합니다.
핵심 내용
원자 책봉이라는 도화선에 불이 붙다
1688년, 후궁 장희빈이 아들(후일의 경종)을 낳습니다. 숙종은 즉시 원자로 책봉하려 하지만, 서인(특히 노론 송시열)이 반대합니다 — '인현왕후가 아직 젊으니 기다려보자.'
1689년, 격노한 숙종은 서인을 일거에 축출하고 남인을 불러들입니다. 이것이 기사환국입니다.
기사환국의 결과 * 송시열: 제주 유배 → 정읍에서 사사(사약) * 인현왕후: 폐위 → 서인으로 강등 * 장희빈: 후궁에서 왕비로 격상 * 서인 대다수 관직 박탈·유배
기사환국(1689) = 서인 축출 + 인현왕후 폐위 + 송시열 사사
숙종의 마음이 바뀌고 또다시 조정이 뒤집히다
시간이 지나며 숙종은 장희빈에 대한 총애가 식고, 폐비 인현왕후에 대한 그리움이 커집니다. 1694년 숙종은 다시 정국을 뒤엎습니다 — 이것이 갑술환국입니다.
갑술환국의 결과 * 남인 축출, 서인(소론 중심) 집권 * 인현왕후 복위(다시 왕비) * 장희빈 강등(왕비 → 희빈) * 1701년: 인현왕후 사망 → 무고의 옥 → 장희빈 사사
장희빈 사사 때, 노론은 사사에 찬성하고 소론은 '왕자의 어머니를 죽이면 안 된다'며 반대합니다. 이 입장 차이가 노론-소론 갈등을 더 깊게 만듭니다.
갑술환국(1694) = 남인 축출 + 인현왕후 복위 + 장희빈 강등
경기갑 — 세 글자로 환국의 순서를 외우자
경신환국(1680): 남인→서인 (허견 역모)
기사환국(1689): 서인→남인 (원자 책봉, 인현 폐위, 송시열 사사)
갑술환국(1694): 남인→서인(소론) (인현 복위, 장희빈 강등)
무고의 옥(1701): 장희빈 사사
숙종 대 문화·제도 키워드 * 상평통보 전국 유통 (1678) * 백두산정계비 건립 (1712, 청과 국경 확정) * 북한산성 축조
기사환국(1689)에서 인현왕후가 복위되었다
숙종 대에 일어난 환국의 순서가 올바른 것은?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완료!
핵심 용어
인현왕후 민씨
서인 명문가 출신 · 서인 지지
장희빈(장옥정)
역관 집안 출신 · 남인 지지
왕비 교체
기사(인현 폐위) ↔ 갑술(인현 복위)
사망
둘 다 1701년 — 인현 병사, 장희빈 사사
정리 노트
기사환국 vs 갑술환국 비교
기사환국(1689)
- 원인
- 원자(후일 경종) 책봉 문제 → 서인 반대
- 결과
- 서인 축출·남인 집권 / 인현왕후 폐위 / 장희빈 왕비 / 송시열 사사
갑술환국(1694)
- 원인
- 숙종 마음이 인현왕후에게 돌아옴
- 결과
- 남인 축출·서인(소론 중심) 집권 / 인현왕후 복위 / 장희빈 강등
1701년 무고의 옥
- 사건
- 인현왕후 사망 → 장희빈 무고 혐의로 사사
- 노론·소론 대립
- 노론 = 사사 찬성 / 소론 = 반대
기사 = 인현 폐위·장희빈 왕비 ↔ 갑술 = 인현 복위·장희빈 강등 (완전한 거울상) 환국 순서: 경신→기사→갑술 = '경기갑' 반드시 암기!
핵심 정리
- 1정치 안정성 파괴 — 5~10년 단위 정권 뒤집힘
- 2패배 = 죽음 → 타협 불가능한 정쟁
- 3숙종의 왕권은 강화, 그러나 붕당정치의 장점 소멸
- 4이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 영조의 탕평책 등장
- 5기사환국(1689) = 서인 축출 + 인현 폐위 + 송시열 사사
- 6갑술환국(1694) = 남인 축출 + 인현 복위 + 장희빈 강등
- 7환국 순서: 경신(1680) → 기사(1689) → 갑술(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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