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7 조선시대 (후기)
실학 — 중농학파
땅에서 답을 찾은 학자들 유형원·이익·정약용
성리학의 공허한 논쟁이 조정을 맴도는 동안, 논두렁에 선 선비들이 붓을 들었습니다. '토지를 고르게 나눠야 백성이 산다' — 유형원이 씨앗을 뿌리고, 이익이 줄기를 세우고, 정약용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조선의 토지가 양반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가?
균전론·한전론·여전론 — 세 학자가 같은 문제에 다른 처방을 내렸습니다. 학자-저서-토지론 3단 매칭을 따라갑니다.
핵심 내용
공허한 논쟁을 접고 현실의 땅을 밟다
조선 후기, 성리학이 교조화됩니다. 현실 문제는 산더미인데 학자들은 이기론·예송 논쟁만 이어갔습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나라가 엉망인데 기존 학문이 답을 주지 못하자, '진짜 쓸모 있는 학문을 하자!' — 이것이 실학의 출발점입니다.
실학 등장 배경 * 성리학의 교조화 * 양란 이후 사회 모순 심화 *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
중농학파(경세치용) vs 중상학파(이용후생 = 북학파)
한 뙈기 땅이 없는 농부에게 나라가 무슨 소용인가
중농학파의 시작은 유형원(17세기)입니다. 반계수록에서 균전론을 주장 — 국가가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자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익(18세기). 성호사설에서 한전론을 주장합니다 — 토지 소유에 상한선을 두자는 것입니다. 이익의 제자들이 성호학파를 형성합니다.
균전론 = 균등 분배(유형원) · 한전론 = 상한선(이익)
강진 유배 18년, 500여 권의 저술을 남기다
정약용(다산)은 유형원·이익의 학문을 계승하여 조선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입니다. 전남 강진에서 18년 유배 생활 동안 500여 권을 저술했습니다.
토지론은 여전론 — 마을 단위로 공동 경작하고, 실제 노동량에 따라 수확물을 분배하자는 것입니다.
정약용의 3대 저술 * 목민심서 → 지방 행정 (수령이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 * 경세유표 → 국가 제도 개혁 (중앙 행정 전면 개편) * 흠흠신서 → 형사 사법 (형벌·재판 개선)
정약용의 기술적 업적 * 거중기 —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기계 → 수원 화성 건설에 활용 * 수원 화성 설계 참여 * 배다리(주교) — 한강에 배를 연결한 임시 다리
정약용 = 다산 = 여전론 = 강진 유배 = 실학 집대성자
세 학자, 세 권의 책, 세 가지 토지론
외우는 법: 균(균등), 한(한계), 여(노동) 저서 매칭: 유-반-균 / 이-성-한 / 정-목경흠-여 * 유(유형원) - 반(반계수록) - 균(균전론) * 이(이익) - 성(성호사설) - 한(한전론) * 정(정약용) - 목경흠(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여(여전론)
학자-저서-토지론 3단 매칭이 시험의 핵심!
토지 소유의 상한선을 설정하여 농민의 토지를 보호하자고 주장한 실학자는?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저술한 형사 사법 개혁서이다
실학 중농학파 완료!
핵심 용어
호
반계(磻溪)
저서
반계수록
토지론
균전론 (토지 균등 분배)
시기
17세기
특징
실학의 선구자, 공거제 주장
제자 그룹
성호학파 (정약용, 안정복, 이중환)
기타
6좌절 — 노비제·과거제·양반문벌 등
균전론(유형원)
균등 분배 — 가장 급진적
한전론(이익)
소유 상한선 — 가장 현실적
여전론(정약용)
공동 경작 + 노동량 분배
정리 노트
중농학파 3인 학자-저서-토지론
- 유형원(반계)
- 반계수록 — 균전론 (토지 균등 분배, 가장 급진적)
- 이익(성호)
- 성호사설 — 한전론 (소유 상한선) + 성호학파 형성
- 정약용(다산)
-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여전론 (공동 경작·노동량 분배)
- 정약용 기술
- 거중기 설계 → 수원 화성 / 배다리 (한강 임시 다리)
암기법: 유-반-균 / 이-성-한 / 정-목경흠-여 목민심서=지방 행정 / 경세유표=국가 제도 / 흠흠신서=형사 사법 — 세 저서의 주제 구분 필수!
핵심 정리
- 1유형원 = 반계수록 = 균전론(균등 분배)
- 2이익 = 성호사설 = 한전론(소유 상한선) + 6좌절
- 3정약용 =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여전론(공동 경작) + 거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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