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요약노트

Ch.9 일제강점기

식민통치·독립운동·임시정부·광복

이 챕터의 내용

1

1910년대 무단통치

헌병경찰제에서 토지조사사업까지 — 무단통치의 촘촘한 수탈 시스템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사라진 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고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집니다. 일제는 병합과 동시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합니다.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심지어 군사권까지 전부 총독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 절대 권력 기관이었습니다.

조선총독은 현역 육해군 대장만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 일왕에게 직접 보고하고, 법률에 해당하는 제령(制令)을 직접 발포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도 필요 없고, 총리 승인도 필요 없고 — 총독이 "이게 법이다" 하면 그게 법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 조선총독 = 현역 무관, 모든 권한 장악
  • 헌병 경찰제 = 즉결 처분권(태형)
  • 토지조사사업 = 신고주의 → 미신고 토지 국유화
  • 회사령 = 허가제 → 민족 자본 억제
  • 105인 사건 = 신민회 탄압 → 독립운동 해외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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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1운동

탑골공원의 함성에서 임시정부 수립까지 — 3.1운동이 바꿔놓은 독립운동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민족자결주의, 고종 서거, 그리고 2.8 독립선언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대통령 윌슨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합니다. "각 민족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원래 패전국 식민지가 대상이었지만,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이를 기회로 봤습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자기 서거합니다. 민간에서는 독살설이 퍼졌고, 고종의 인산일(장례일, 3월 3일)을 앞두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들 것이 예상됩니다.

  • 배경: 민족자결주의 + 고종 서거 + 2.8 독립선언
  • 주도: 민족대표 33인 (천도교 15 + 기독교 16 + 불교 2)
  • 선언서: 최남선 작성, 태화관에서 낭독
  • 성격: 거족적 독립운동 (전 계층·전 지역)
  • 의의: 임시정부 수립, 독립운동 전환점, 5.4운동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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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가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상해, 서울 세 곳의 열망이 하나로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하나가 아니라 세 개나 만들어졌습니다. 대한국민의회(블라디보스토크, 3.21), 대한민국 임시정부(상해, 4.11), 한성 임시정부(서울, 4.23). 그만큼 독립 정부 수립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던 것입니다.

1919년 9월, 세 임시정부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됩니다. 국호는 한성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위치는 상해 임시정부의 기존 조직 활용, 법통은 한성 임시정부(국내 13도 대표) 계승. 통합 장소로 상해가 선택된 이유는 프랑스 조계지라 일제의 직접적 탄압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최초의 민주공화정 정부 (왕정 → 공화정)
  •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법통 계승 명시
  •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
  • 삼권분립, 기본권 보장 등 근대 민주주의 도입
  • 1919~1945, 26년간 유지된 끈질긴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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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시정부의 활동과 변천

한인애국단의 의거에서 한국광복군의 창설까지 — 임시정부의 시련과 부활을 따라갑니다.

위임통치 청원과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두어달라고 청원합니다. 이는 사실상 "아직 독립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었고, 독립운동가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국무총리 이동휘사회주의 노선으로 소련과 연계하려 했고, 독립운동 자금 사용을 둘러싼 분쟁 끝에 1921년 임시정부를 이탈합니다. 갈등이 극에 달하자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됩니다.

  • 이승만 = 위임통치 청원, 1925년 탄핵
  • 김구 = 한인애국단(1931), 주석(1940)
  • 김원봉 = 의열단(1919), 조선의용대 → 광복군 합류
  • 조소앙 = 삼균주의, 건국강령(1941)
  • 지청천 = 한국광복군 총사령관(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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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20년대 문화통치

검열된 신문에서 치안유지법까지 — 문화통치의 기만적 본질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헌병을 거두고 경찰을 늘리다, 이름만 바뀐 탄압

3.1운동 이후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면서 문화통치가 시작됩니다. 겉으로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을 내세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기만적 유화입니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꿨지만, 경찰 수는 약 6,000명에서 약 20,00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합니다. 감시의 눈이 더 촘촘해진 것입니다. 문관 총독 임명을 가능하게 했지만, 실제로 임명된 문관 총독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 문화통치 = 3.1운동 이후 전환, 기만적 유화책
  • 경찰 수 3배 증가, 문관 총독 0명 = 겉과 속이 다름
  • 조선일보·동아일보 허용하되 검열·정간으로 통제
  • 치안유지법(1925)으로 독립운동 탄압 법제화
  • 산미증식계획으로 쌀 수탈, 회사령 폐지로 일본 자본 유입
  • 신간회(1927) = 좌우합작,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 3대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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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산미증식계획과 소작쟁의

수탈의 논리에서 저항의 함성까지 — 산미증식계획과 소작쟁의의 인과관계를 따라갑니다.

1918년 일본 쌀 소동, 그 해결책은 식민지 수탈이었다

1918년, 일본에서 아주 큰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쌀 소동(米騷動)이에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내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도시 인구가 폭증했거든요. 쌀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쌀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일제는 자기 나라 농업을 개혁하는 대신, 식민지 조선에서 쌀을 뽑아오겠다고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산미증식계획의 출발점입니다. 1920년에 시작되어 15년간 920만 석을 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 산미증식계획(1920~1934): 증산량 < 반출량 → 식량 부족
  • 농민 부담: 수리조합비·농사개량비 → 이중 수탈
  • 암태도 소작쟁의(1923): 전남 신안, 1년 투쟁, 부분 승리
  • 조선노농총동맹(1924) → 분리(1927): 농민총동맹+노동총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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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실력양성운동

물산장려에서 문맹퇴치까지 — 세 운동의 주도 인물·구호·결과를 비교합니다.

내 살림 내 것으로 — 평양에서 시작된 경제 자립 운동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노선은 크게 무장투쟁실력양성으로 갈립니다. 실력양성운동은 경제력·교육·문화 수준을 높여 독립할 실력을 갖추자는 방향이었습니다.

경제 분야의 대표가 물산장려운동입니다.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이 주도하여 시작했어요.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 — 토산품 애용과 일본 상품 불매가 핵심이었습니다.

  • 물산장려: 평양, 조만식 / 민립대학: 이상재 → 조만식 vs 이상재 혼동 주의
  • 경성제국대학 = 조선인 위한 대학 아님, 민립대학운동 차단 목적
  • 동브조문: 동아=브나로드, 조선=문자보급 → 바꿔 출제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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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회운동과 신간회

조선공산당에서 신간회 해소까지 — 1920년대 사회운동의 지도를 그려봅니다.

러시아 혁명의 물결이 조선에 밀려오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반제국주의 사상인 사회주의가 1920년대 조선에 밀려들어옵니다. 식민지 해방 논리와 맞닿아 큰 인기를 끌었고, 1925년 조선공산당이 서울에서 비밀리에 창립됩니다.

민족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납니다. 타협적 민족주의(이광수 등)는 일제 체제 내 자치를 추구했고, 비타협적 민족주의(이상재, 안재홍 등)는 완전한 독립만 인정했습니다. 비타협파가 사회주의와 손잡기로 결심하면서 신간회가 탄생합니다.

  • 신간회(1927~1931): 비타협 민족주의+사회주의, 이상재 회장, 기회주의 부인
  • 근우회(1927): 신간회의 여성 자매 단체
  • 신간회 활동: 광주학생운동 진상조사단 파견 (주도가 아닌 지원!)
  • 해소 원인: 코민테른 방침+내부 갈등 (일제 탄압은 간접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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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1926에서 1929까지 — 3대 독립운동의 비교표를 완성합니다.

순종의 인산일, 다시 한 번 만세가 울리다

1926년 4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사망합니다. 장례식(인산일)은 6월 10일. 3.1운동이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터졌듯이, 이번에도 만세운동이 준비됩니다.

사회주의 계열(조선공산당 관련)과 학생 계열이 따로따로 준비했습니다. 사회주의 계열의 계획은 사전 발각되어 주모자가 검거되었지만, 학생 계열이 별도로 준비했기에 운동은 실행됩니다.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에서 학생들이 격문을 살포하며 만세를 외쳤습니다.

  • 주도 세력 변화: 종교계+학생 → 사회주의+학생 → 학생
  • 6.10만세(1926) → 좌우 합작 필요 인식 → 신간회(1927)
  • 광주학생운동 → 신간회 진상조사단 파견 (주도 아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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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봉오동에서 3부 성립까지 — 무장 독립전쟁의 영광과 시련을 따라갑니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만주(간도)에 독립군 기지가 형성된 이유는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이주 한인들이 이미 정착해 있었으며, 일제의 직접 통치가 미치지 않는 중국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서간도에는 신흥무관학교(이회영·이시영), 북간도에는 여러 독립군 부대가 활동했습니다.

홍범도=대한독립군 · 김좌진=북로군정서 · 부대명 바꿔 출제 주의!

  • 봉오동(6월)=홍범도, 청산리(10월)=김좌진+홍범도
  • 간도참변=일본군 보복, 자유시참변=러시아 적군
  • 대한독립군단(서일 총재) →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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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무장투쟁 단체 변천

자유시참변의 비극에서 대전자령 전투의 승리까지 — 만주 무장투쟁의 변천을 따라갑니다.

자유시참변(1921), 독립군 최대의 위기

봉오동·청산리 대첩으로 일본군에 큰 타격을 준 독립군은 간도 참변으로 근거지를 잃고 러시아 자유시(스보보드니)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소련 적색군이 독립군의 무장 해제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자 무력 충돌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시참변(1921)입니다.

수백 명의 독립군이 희생되면서 만주 독립군 세력이 크게 약화됩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독립군은 다시 만주로 돌아와 조직을 체계적으로 재편합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 체제입니다.

  • 자유시참변(1921) → 독립군 재편 → 3부(참·정·신) 성립
  • 3부 = 군사 조직 + 자치 정부(행정·입법·사법)
  • 참의부(압록강) / 정의부(남만주) / 신민부(북만주)
  • 혁신의회→한국독립군(지청천) + 국민부→조선혁명군(양세봉)
  • 쌍성보·대전자령(한국독립군) / 영릉가·흥경성(조선혁명군) = 한중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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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의열단과 한인애국단

김원봉의 의열단에서 김구의 한인애국단까지 — 의열 투쟁의 불꽃을 따라갑니다.

의열단(1919), 김원봉의 직접 행동 노선

1919년 만주 지린성(길림)에서 김원봉을 중심으로 약 13명이 결성한 의열단. 3·1 운동 이후 '평화적 시위만으로는 안 된다'는 인식 속에 탄생했습니다. 목표는 일제 요인 암살 + 식민 통치 기관 파괴였습니다.

의열단에는 공약 10조가 있었습니다. 5파괴 대상(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경찰서 등)과 7가살 대상(총독, 군 수뇌, 매국적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했습니다.

  • 의열단(1919) = 김원봉 / 만주 지린성 / 지속적 개별 의거
  • 조선혁명선언(1923) = 신채호 작성 / 민중 직접 혁명론
  • 박재혁(부산경찰서)·김익상(조선총독부)·나석주(동양척식주식회사)
  • 한인애국단(1931) = 김구 / 상해 / 대형 의거 기획
  • 이봉창(1932.1, 도쿄, 실패) · 윤봉길(1932.4, 상해, 성공)
  • 윤봉길 의거 → 임시정부 활성화 + 중국 지원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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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930~40년대 민족말살통치

헌병의 칼에서 창씨개명의 굴욕까지 — 일제 통치의 마지막 단계를 파헤칩니다.

무단 → 문화 → 민족말살, 탈을 바꾼 36년의 지배

일제는 36년간 통치 방식을 3번 바꿨습니다. 1910년대 무단통치(헌병경찰·태형), 1920년대 문화통치(기만적 회유), 그리고 1930~40년대 민족말살통치(정체성 말살). 오늘 배울 3단계가 가장 잔인한 시기입니다.

너희는 일본의 신민이다, 이름도 말도 신앙도 바꿔라

  • 통치 3단계: 무단(1910s) → 문화(1920s) → 민족말살(1930~40s)
  • 민족말살 배경 = 중일전쟁·태평양전쟁 → 황국신민화
  • 황국신민화 = 내선일체 + 일선동조론 + 황국신민서사 + 신사참배
  • 창씨개명(1940) = 사실상 강제(80%)
  • 조선어 폐지(3차 교육령, 1938) → 신문 폐간(1940)
  • 1940년 = 창씨개명 + 신문 폐간 + 한국광복군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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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전시 인적·물적 수탈

지원이라는 거짓말에서 완전한 강제까지 — 전시 수탈의 실태를 파헤칩니다.

국가총동원법(1938), 수탈의 만능키

중일전쟁(1937) 직후 제정된 국가총동원법(1938)은 '전쟁에 필요하면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합니다. 이 법 하나로 징용, 징병, 공출 등 모든 수탈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국가총동원법 = 1938년 = 전시 수탈의 법적 근거

  • 국가총동원법(1938) = 전시 수탈의 법적 근거
  • 인적 수탈 3단계: 지원병(1938)→학도지원병(1943)→징병(1944)
  • 징용(노동력) vs 징병(군사력) vs 공출(물자) 정확히 구분
  • 징용: 탄광·공장 강제 동원 / 군함도(하시마 섬)
  • 공출: 식량·금속·면화 강제 수거 → 식량난
  • 위안부(성적 착취) vs 근로정신대(공장 노동)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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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조선어학회와 문화 수호

주시경에서 조선어학회까지 — 한글 수호의 기나긴 여정을 따라갑니다.

한글을 지키는 것, 곧 민족을 지키는 것

일제가 한국어를 말살하려 한 시기에,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 자체가 독립운동이 됩니다. 일제도 이를 알았기에 치안유지법으로 한글 연구를 탄압했습니다.

한글 연구의 아버지 주시경(1876~1914)이 국어문법을 저술하고 국어연구학회(1908)를 설립합니다. 그의 제자들(최현배, 이극로 등)이 뜻을 이어받아 조선어학회를 이끌게 됩니다.

  • 계보: 국어연구학회(1908) → 조선어연구회(1921) → 조선어학회(1931)
  •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 표준어 사정(1936) = 사전 편찬의 토대
  • 조선어학회 사건(1942) = 치안유지법, 33명 검거, 이윤재·한징 옥사
  • 원고: 서울역 창고 발견(1945) → 큰사전 6권 완간(1947~1957)
  • 이극로(간사장, 사전 주도) vs 최현배(우리말본, 한글 전용론)
  • 문화 수호: 역사(신채호·박은식) + 문학(윤동주·이육사) + 종교(신사참배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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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국광복군과 건국 준비

광복군에서 건국동맹까지 — 독립의 마지막 역량이 어떻게 쏟아졌는지 따라갑니다.

1940년 충칭, 드디어 우리의 정규군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역사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드디어 정규 군대를 창설한 것입니다. 바로 한국광복군입니다. 상하이에서 항저우, 창사를 거쳐 충칭까지 — 고난의 대장정을 거치면서도 임시정부가 포기하지 않은 꿈, '자기 군대를 갖겠다'는 꿈이 현실이 된 순간입니다.

총사령관지청천 장군. 1930년대에 한국독립군을 이끌고 쌍성보·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참모장이범석. 청산리 전투 당시 김좌진 장군 밑에서 싸웠고, 훗날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이 됩니다.

  • 한국광복군: 1940년 충칭, 총사령관 지청천, 참모장 이범석
  • 건국강령(1941): 조소앙의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 균등)
  • 광복군 3대 활동: 영국(인도·미얀마), 미국(OSS), 국내 진공 작전(미실행)
  • 조선건국동맹(1944): 여운형, 국내 비밀 조직 → 건국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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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광복

카이로 선언에서 8.15까지 — 광복의 기쁨과 분단의 씨앗을 함께 살펴봅니다.

35년의 어둠이 걷히다, 그리고 새로운 갈림길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가 모여 카이로 선언을 발표합니다. 핵심 내용: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조선을 자유 독립시킨다."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약속한 최초의 공식 문서입니다.

그러나 '적당한 시기에'라는 표현이 문제였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때가 되면'이라는 뜻. 이 표현이 나중에 신탁통치 논의의 빌미가 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한국인의 참여 없이 강대국끼리 이루어졌다는 점 — 분단 비극의 씨앗입니다.

  • 카이로(1943, 미·영·중): 적당한 시기에 독립 — 최초 국제 약속
  • 얄타(1945.2, 미·영·소): 소련 대일참전 — 38선 배경
  • 포츠담(1945.7, 미·영·소): 카이로 재확인 + 무조건 항복 요구
  • 광복(1945.8.15): 의의 4가지 + 한계 4가지
  • 순서 암기: 카얄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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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험특강] 일제 시기별 통치 3단계 완전비교

3단계 완전 비교표 하나면 이 단원은 만점입니다.

무단 → 문화 → 민족말살, 한눈에 끝장내기

일제 강점기 36년(1910~1945)은 3단계로 나뉩니다. 국제 정세, 독립운동의 양상, 일본 본국의 상황에 따라 통치 전략이 바뀐 것입니다. 무단(1910년대) → 문화(1920년대) → 민족말살(1930~40년대), 이 시기 구분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공포의 시대 — 헌병이 거리를 지배하다

  • 무단(1910년대): 헌병경찰, 토지조사사업, 데라우치
  • 문화(1920년대): 보통경찰(3배 증가), 산미증식계획, 사이토 — 기만적 유화
  • 민족말살(1930~40년대):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징병제, 공출
  • 전환 계기: 한일 병합 → 3·1 운동 → 만주사변
  • 동원 순서: 지원병(38) → 학도(43) → 징병(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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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시험특강] 독립운동 단체·인물 총매칭

단체-지도자-전투 매칭 총정리 — 자주 틀리는 혼동 포인트까지 완벽 정리합니다.

이 단체는 누가 만들었고, 뭘 했는지 한 번에!

독립운동 단체 문제는 한국사 시험의 '단골 메뉴'입니다. 단체-지도자-시기-핵심 활동을 자유자재로 매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기순으로 전체 그림을 먼저 그려봅시다.

가장 많이 혼동하는 두 단체를 확실히!

  • 신민회(1907): 안창호 — 비밀결사, 105인 사건
  • 의열단(1919): 김원봉 — 폭탄 의거, 조선혁명선언(신채호)
  • 한인애국단(1931): 김구 — 이봉창·윤봉길 의거
  • 봉오동(1920.6): 홍범도, 청산리(1920.10): 김좌진
  • 한국독립군(1930s): 지청천=쌍성보·대전자령, 조선혁명군: 양세봉=영릉가
  • 신간회(1927): 이상재, 좌우합작, 자매단체=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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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핵심 용어 모음

📚

교육

대성학교(평양), 오산학교(정주) 설립

🏭

산업

태극서관(출판), 자기회사(도자기) 운영

군사

만주 삼원보 → **신흥무관학교** 설립

🏛

이념

**공화정** 체제의 근대 국가 건설

🌾

토지

토지조사사업(**신고주의**)

🏢

기업

회사령(**허가제**)

🌲

산림

산림령(1911), 산림 국유화

🐟

어업

어업령, 일본인 어민 진출

광업

광업령, 일본 자본 독점

🏔

만주(서간도)

삼원보 → 경학사 → **신흥무관학교**

🏔

만주(북간도)

간민회, 중광단, 대종교 중심

🌊

연해주

권업회, 대한광복군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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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정리

항목토지조사사업산미증식계획
시기1910~1918년 (무단통치)1920~1934년 (문화통치)
핵심토지 소유권 확보쌀 증산·반출
결과미신고 토지 → 총독부 소유쌀 반출 증가 → 식량 부족
항목봉오동 전투청산리 대첩
시기1920년 61920년 10
지휘홍범도 (대한독립군)김좌진(북로군정서) + 홍범도 등
규모1회 전투6일 10여 회
전과일본군 대파 (최초 대승)독립전쟁 최대 전과
항목한국독립군조선혁명군
총사령관지청천양세봉
활동 지역북만주남만주
연합 대상중국 호로군중국 의용군
대표 전투쌍성보·대전자령영릉가·흥경성
모체 정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항목의열단한인애국단
결성1919년, 만주 지린성1931년, 상해
중심 인물김원봉김구
활동 방식지속적 개별 암살·파괴세계적 파장의 대형 의거
이론적 토대조선혁명선언(신채호)-
주요 의거박재혁·김익상·나석주이봉창·윤봉길
이후 발전조선의용대(1938)-
항목무단통치민족말살
시기1910년대1930~40년대
배경강제 병합 직후중일·태평양전쟁
언론완전 금지신문 폐간(1940)
교육실업 위주, 차별조선어 폐지
특징물리적 억압정체성 말살
항목이극로최현배
역할학회 운영 총괄(간사장)문법 연구
대표 업적사전 편찬 주도'우리말본' 저술
특징독일 유학파 언어학자주시경 제자 / 한글 전용론
항목한국광복군조선건국동맹
활동 지역해외 (충칭)국내 (서울)
중심 세력대한민국 임시정부여운형 중심
창설 시기1940년1944년
성격정규 군사 조직비밀 정치 조직
광복 후개인 자격 귀국건국준비위원회로 발전
항목무단통치 (1910년대)문화통치 (1920년대)
경찰헌병경찰 (즉결처분권)보통경찰 (수 3배 증가)
언론전면 금지한글 신문 허용 (검열·정간)
교육우민화 (실업교육)조선어 교육 허용
경제 수탈토지조사사업산미증식계획
총독데라우치사이토 마코토
전환 계기한일 병합3·1 운동
항목의열단한인애국단
설립1919년 (만주 지린)1931년
지도자김원봉김구
이론가신채호 (조선혁명선언)
활동 방식국내 기관 폭탄 투척해외 요인 암살
대표 인물박재혁·김상옥·나석주이봉창·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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