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9 일제강점기

3.1운동

3.1운동의 배경(민족자결주의, 고종 서거, 2.8 독립선언)을 설명한다민족대표 33인의 구성과 독립선언서의 특징을 이해한다3.1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파악한다

1919년 3월 1일, 2천만이 외친 대한 독립 만세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고종의 갑작스러운 서거, 도쿄에서의 2.8 독립선언 — 이 모든 것이 모여 1919년 3월 1일, 거족적 만세운동이 폭발합니다.

비폭력 시위로 시작된 만세운동은 어떻게 전국으로 확산되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탑골공원의 함성에서 임시정부 수립까지 — 3.1운동이 바꿔놓은 독립운동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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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민족자결주의, 고종 서거, 그리고 2.8 독립선언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대통령 윌슨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합니다. "각 민족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원래 패전국 식민지가 대상이었지만,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이를 기회로 봤습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자기 서거합니다. 민간에서는 독살설이 퍼졌고, 고종의 인산일(장례일, 3월 3일)을 앞두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들 것이 예상됩니다.

3.1운동보다 먼저 독립을 외친 곳이 있습니다. 1919년 2월 8일,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조선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2.8 독립선언을 발표합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3.1운동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됩니다.

민족자결주의 대두: 윌슨의 14개조 평화 원칙(1918)

고종 서거 + 독살설: 1919.1.21, 민심에 불을 붙임

2.8 독립선언 (도쿄): 재일 유학생, 3.1운동의 기폭제

3.1운동 폭발: 1919.3.1, 거족적 만세운동

민족자결주의 · 고종 서거 · 2.8 독립선언

태화관에서 선언하고 탑골공원에서 외치다

3.1운동을 계획한 핵심 세력은 종교계였습니다. 천도교의 손병희, 기독교의 이승훈, 불교의 한용운 — 종교를 넘어 민족이 하나가 된 순간입니다.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 합계 33명.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작성했습니다. "오등은 자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 비폭력·평화적 기조와 공약 3장을 담은 이 선언서는 보성사에서 2만 1천 매 인쇄되어 전국에 배포됩니다.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이 아닌 태화관(인사동 요릿집)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자진해서 일본 경찰에 연행됩니다. 한편 탑골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시위를 시작합니다.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선언! - 민족대표 33인: 태화관에서 낭독 (탑골공원 아님!) - 독립선언서 작성: 최남선 (낭독과 혼동 주의) - 인쇄: 보성사 (천도교 인쇄소) - 탑골공원: 학생·시민이 별도로 만세 시위

민족대표 33인 · 태화관 · 최남선 · 손병희

학생에서 농민까지, 서울에서 전국으로

3월 초 서울·평양 등 주요 도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3월 중순 전국 읍면으로, 3월 말~4월에는 농촌과 해외까지 확산됩니다. 초기 학생·종교인 중심에서 상인·노동자, 그리고 농민까지 대거 참여합니다. 약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거족적 독립운동입니다.

충남 천안의 아우내 장터에서는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주도합니다. 시위 도중 부모님이 순국하고, 유관순은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만 17세에 순국합니다.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는 일본군이 주민들을 교회에 모아놓고 불을 질러 23명을 학살합니다. 이 만행을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가 세계에 알렸고, 그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립니다.

거족적 운동 · 유관순 · 아우내 장터 · 제암리 학살 · 스코필드

독립운동의 전환점, 임시정부로 이어지다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1919.4.11)입니다. "독립을 이끌 정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만들어졌고,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세워집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1919.5.4)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일제의 통치 방식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시킨 계기가 됩니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장소는 탑골공원이다.

3.1운동 이전에 일본 도쿄에서 먼저 발표된 독립선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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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용어

의의 1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

의의 2

무장투쟁 본격화의 전환점

의의 3

중국 5.4운동에 영향

한계 1

즉각적 독립 달성 실패

한계 2

체계적 지도부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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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노트

3.1운동 배경과 전개

배경

민족자결주의
윌슨 14개조 — 각 민족의 자결권
고종 서거(1919.1)
독살설 → 전국 민심 격앙
2.8 독립선언
도쿄 유학생, 직접 기폭제

전개

독립선언서 작성
최남선
낭독 장소
33인 → 태화관 / 시민·학생 → 탑골공원
유관순
아우내 장터 — 서대문 형무소 순국
제암리
일본군 학살 → 스코필드 세계에 알림

민족대표 33인 낭독 장소 = 태화관 (탑골공원 아님!) 독립선언서 작성 = 최남선 (손병희는 천도교 대표, 다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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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1배경: 민족자결주의 + 고종 서거 + 2.8 독립선언
  • 2주도: 민족대표 33인 (천도교 15 + 기독교 16 + 불교 2)
  • 3선언서: 최남선 작성, 태화관에서 낭독
  • 4성격: 거족적 독립운동 (전 계층·전 지역)
  • 5의의: 임시정부 수립, 독립운동 전환점, 5.4운동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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