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9 일제강점기

1920년대 문화통치

문화통치의 외형적 변화와 실제 기만성을 대비하여 설명한다산미증식계획과 치안유지법의 핵심을 이해한다신간회·광주학생항일운동 등 민족운동의 흐름을 파악한다

부드러운 칼날, 유화인 척한 탄압의 진화

3.1운동 이후 일제는 통치 방식을 바꿉니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문관 총독 임명 가능 — 그러나 경찰 수는 3배로 늘고, 문관 총독은 0명.

겉으로는 유화, 속으로는 더 교묘한 탄압 — 문화통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검열된 신문에서 치안유지법까지 — 문화통치의 기만적 본질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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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헌병을 거두고 경찰을 늘리다, 이름만 바뀐 탄압

3.1운동 이후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면서 문화통치가 시작됩니다. 겉으로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을 내세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기만적 유화입니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꿨지만, 경찰 수는 약 6,000명에서 약 20,00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합니다. 감시의 눈이 더 촘촘해진 것입니다. 문관 총독 임명을 가능하게 했지만, 실제로 임명된 문관 총독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1920년에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한글 신문 창간이 허용됩니다. 하지만 사전 검열, 삭제(복자), 정간, 폐간 등의 탄압이 반복됩니다. 1940년에는 강제 폐간됩니다.

문화통치 · 사이토 마코토 · 경찰 3배 · 문관 총독 0명

법으로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민족을 나누어 지배하다

1925년 제정된 치안유지법 — "국체를 변혁하려는 자, 사유재산제를 부인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입니다. 사실상 독립운동사회주의 운동을 법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1945년 해방까지 핵심 탄압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문화통치의 가장 교활한 측면은 민족 분열 정책입니다. 친일파를 육성하고, 자치론("독립은 무리이니, 일제 안에서 자치를 하자")을 유도하여 독립 의지를 약화시키려 했습니다. 이광수·최린 등이 자치론을 주장하면서 민족운동 진영이 분열됩니다.

치안유지법(1925) · 민족 분열 · 자치론

쌀을 빼앗기고 잡곡으로 연명하다

1920년대 핵심 경제 수탈 정책은 산미증식계획(1차: 1920~1925, 2차: 1926~1934)입니다. 명목은 쌀 증산이지만, 늘어난 것보다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양이 더 많았습니다. 조선 농민은 만주에서 잡곡(조·수수)을 수입해 먹어야 했습니다.

1920년, 무단통치의 상징 회사령이 폐지되어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뀝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본의 조선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일본 대기업들이 쏟아져 들어와 민족 자본을 압도합니다.

1910년대 vs 1920년대 경제 수탈 비교 -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신고주의) + 회사령(허가제) -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쌀 수탈) + 회사령 폐지(신고제) - "토지=10년대, 쌀=20년대" 시기 구분 필수!

산미증식계획 · 허가제→신고제 · 일본 자본 유입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 그리고 좌우합작의 신간회

일제의 경제 수탈에 맞서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납니다. 조만식 등이 주도하여 평양에서 시작,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를 구호로 내걸었습니다. 한편 민립대학 설립운동(1923, 이상재)은 일제가 경성제국대학(1924)을 먼저 세워 명분을 차단하면서 좌절됩니다.

1926년 순종 서거6.10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손을 잡습니다. 1927년 신간회 결성 — 좌우합작 단체, 회장 이상재, "기회주의 일체 부인"(자치론 배격). 자매 단체로 근우회가 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에서 한·일 학생 간 충돌(통학열차 사건)을 발단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폭발합니다. 전국 194개 학교, 약 54,000명이 참여한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 항일운동입니다. 신간회가 진상조사단을 파견하며 지원했습니다.

물산장려운동(조만식) · 신간회(1927) ·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완화가 아니라 탄압의 고도화

문화통치 시기에 문관 총독이 실제로 임명되었다.

1927년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여 결성한 좌우합작 단체는?

key

핵심 용어

👮

보통 경찰 전환

경찰 수 3배 증가

👔

문관 총독 가능

실제 임명 0명

📰

한글 신문 허용

검열·정간·폐간 반복

🚫

태형 폐지

치안유지법 등 다른 탄압 강화

1️⃣

3.1운동 (1919)

거족적 독립운동, 임시정부 수립 계기

2️⃣

6.10 만세운동 (1926)

순종 인산일, 학생 중심, 신간회 결성 계기

3️⃣

광주학생항일운동 (1929)

통학열차 사건 발단, 신간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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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노트

문화통치의 기만성

겉 vs 속

보통 경찰 전환
경찰 수 3배 증가 (약 6,000→20,000명)
문관 총독 가능
실제 임명 0명
한글 신문 허용
검열·정간·폐간 반복
태형 폐지
치안유지법(1925)으로 더 교묘한 탄압

산미증식계획

시기
1920~1934 (문화통치 기간)
실상
증산량보다 반출량이 더 많음 → 식량 부족
대체식량
만주산 잡곡(조·수수) — "쌀의 북상, 잡곡의 남하"

3대 기만 — 경찰 3배 증가, 문관 총독 0명, 신문 검열·정간 토지=1910년대, 쌀=1920년대 (시기 혼동 최빈출!)

1920년대 민족운동 총정리

3대 독립운동

3.1운동(1919)
거족적, 종교계+학생, 임시정부 수립 계기
6.10만세운동(1926)
순종 인산일, 사회주의+학생, 신간회 촉진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한일 학생 충돌, 3.1 이후 최대 규모
물산장려운동
조만식, 평양, "내 살림 내 것으로"
신간회(1927)
회장 이상재, 기회주의 부인, 자매단체 근우회
신간회 해소(1931)
코민테른 방침 변화 (일제 강제 해산 아님!)

신간회는 "광주학생운동 주도"가 아닌 "진상조사단 파견" (주도 아닌 지원!) 신간회 해소 = 자발적 / 해산 = 강제적 — 용어 구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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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1문화통치 = 3.1운동 이후 전환, 기만적 유화책
  • 2경찰 수 3배 증가, 문관 총독 0명 = 겉과 속이 다름
  • 3조선일보·동아일보 허용하되 검열·정간으로 통제
  • 4치안유지법(1925)으로 독립운동 탄압 법제화
  • 5산미증식계획으로 쌀 수탈, 회사령 폐지로 일본 자본 유입
  • 6신간회(1927) = 좌우합작,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 3대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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