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9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활동과 변천
위기와 갈등을 넘어, 광복의 그날까지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 침체에 빠진 임시정부에 김구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26년간의 파란만장한 여정, 임시정부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광복을 맞이했는가?
한인애국단의 의거에서 한국광복군의 창설까지 — 임시정부의 시련과 부활을 따라갑니다.
핵심 내용
위임통치 청원과 국민대표회의의 결렬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두어달라고 청원합니다. 이는 사실상 "아직 독립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었고, 독립운동가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국무총리 이동휘는 사회주의 노선으로 소련과 연계하려 했고, 독립운동 자금 사용을 둘러싼 분쟁 끝에 1921년 임시정부를 이탈합니다. 갈등이 극에 달하자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됩니다.
국민대표회의(1923) = 창조파 vs 개조파 - 창조파: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 정부 수립 (신채호, 박용만) - 개조파: 임시정부를 유지하되 개혁 (안창호) - 결과: 결렬 → 임시정부 침체기 돌입 - 1925년: 이승만 탄핵(면직) → 국무령제 전환
위임통치 청원 · 국민대표회의 · 창조파 vs 개조파
이봉창의 수류탄,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
침체에 빠진 임시정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 김구. 1931년 임시정부 직속 특무 조직 한인애국단을 조직합니다. 강렬한 의거를 통해 세계의 이목을 끌고,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리려 한 것입니다.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가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합니다.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중국 장제스가 "한국인의 독립 의지에 감동했다"며 임시정부 지원을 결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천장절 기념 행사장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합니다.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사망, 다수 부상.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인 청년 하나가 해냈다"고 감탄합니다.
의열단 vs 한인애국단 — 혼동 주의! - 의열단: 김원봉(1919), 만주 지린, 이념 =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 한인애국단: 김구(1931), 상해, 임시정부 직속 - 의열단 의거: 김익상·김상옥·나석주 - 한인애국단 의거: 이봉창·윤봉길
한인애국단(김구) · 이봉창 · 윤봉길 · 훙커우 공원
상해에서 충칭까지, 8년간 7개 도시를 전전하다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임시정부는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상해 → 항저우 → 전장 → 창사 → 광저우 → 류저우 → 치장 → 충칭(1940). 8년간 7개 도시를 전전한 끝에 충칭에 정착합니다.
한국광복군은 영국군과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합동 작전을 수행하고, 미국 OSS와 국내 진입 작전(독수리 작전)을 준비했으나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 실행 직전에 무산됩니다.
건국강령(1941)은 조소앙의 삼균주의 — 정치 균등, 경제 균등, 교육 균등 — 를 기반으로 한 독립 후 국가의 청사진입니다.
충칭 · 한국광복군 · 건국강령 · 삼균주의(조소앙)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6년의 여정
임시정부 수립·통합 (1919): 상해, 대통령 이승만
국민대표회의 결렬 (1923): 창조파 vs 개조파 → 침체기
한인애국단 조직 (1931): 김구, 이봉창·윤봉길 의거
충칭 정착 (1940): 주석 김구, 한국광복군 창설
대일 선전포고 (1941): 건국강령 발표, 좌우합작
해방 (1945.8.15): 26년간의 여정 마무리
한인애국단을 조직한 인물과 의열단을 조직한 인물을 올바르게 짝지은 것은?
한국광복군의 국내 진입 작전(독수리 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핵심 용어
주석제 도입(1940)
김구 주석 취임, 강력한 리더십
한국광복군(1940.9)
총사령관 지청천, 정규 군대 보유
건국강령(1941)
조소앙의 삼균주의 기반
대일 선전포고(1941.12)
태평양전쟁 발발 후 공식 선전포고
좌우합작(1942)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일부 합류
정리 노트
임시정부 침체기와 한인애국단
위기와 갈등
- 위임통치 청원
- 이승만 → 독립운동가 분노
- 국민대표회의(1923)
- 창조파(신채호·박용만) vs 개조파(안창호) → 결렬
- 이승만 탄핵(1925)
- 국무령제로 전환
한인애국단 의거
- 이봉창(1932.1)
- 도쿄, 일왕에 수류탄 투척 — 실패(미수)
- 윤봉길(1932.4.29)
- 상해 훙커우 공원, 도시락 폭탄 — 시라카와 대장 사망
- 의의
- 장제스의 임시정부 지원 결정
한인애국단(김구) ≠ 의열단(김원봉) — 시험 최빈출 혼동 함정 이봉창(1월, 도쿄, 실패) → 윤봉길(4월, 상해, 성공)
충칭 시기 임시정부의 르네상스
- 주석제 도입(1940)
- 김구 주석, 강력한 리더십
- 한국광복군(1940.9)
- 총사령관 지청천, 정규 군대 창설
- 건국강령(1941)
- 조소앙의 삼균주의 — 정치·경제·교육 균등
- 대일 선전포고(1941.12)
-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교전국 지위 주장
- 좌우합작(1942)
-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일부 합류
- 국내 진공 작전
- 미국 OSS와 협력 — 해방으로 실행 직전 무산
건국강령 = 조소앙(삼균주의), 광복군 총사령관 = 지청천 국내 진공 작전은 실패가 아니라 "해방으로 실행 못함"
핵심 정리
- 1이승만 = 위임통치 청원, 1925년 탄핵
- 2김구 = 한인애국단(1931), 주석(1940)
- 3김원봉 = 의열단(1919), 조선의용대 → 광복군 합류
- 4조소앙 = 삼균주의, 건국강령(1941)
- 5지청천 = 한국광복군 총사령관(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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