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9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만주 벌판에서 울려 퍼진 독립군의 총성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연이어 대파합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 뒤에는 간도참변과 자유시참변의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승리와 비극이 교차한 1920~1921년, 독립군은 어디로 향했는가?
봉오동에서 3부 성립까지 — 무장 독립전쟁의 영광과 시련을 따라갑니다.
핵심 내용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만주(간도)에 독립군 기지가 형성된 이유는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이주 한인들이 이미 정착해 있었으며, 일제의 직접 통치가 미치지 않는 중국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서간도에는 신흥무관학교(이회영·이시영), 북간도에는 여러 독립군 부대가 활동했습니다.
홍범도=대한독립군 · 김좌진=북로군정서 · 부대명 바꿔 출제 주의!
매복과 유인, 독립군 최초의 대승
1920년 6월, 독립군의 국내 진입 작전에 자극된 일본군이 만주로 추격해 옵니다. 홍범도는 이를 역이용하여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합니다. 좁은 골짜기 양쪽에 매복을 배치하고 삼면에서 집중 사격 — 일본군을 대파합니다.
봉오동 전투 핵심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 홍범도(대한독립군) 지휘, 매복·유인 전술 독립군 최초의 대규모 승전 일본군 → 대규모 토벌 계획 → 청산리 대첩으로 연결
봉오동(6월) · 홍범도 · 매복 유인 · 최초 대승
6일간 10여 회 전투, 독립전쟁 최대 전과
봉오동에서 패한 일본군은 수만 명의 토벌대를 동원합니다. 이에 김좌진(북로군정서)과 홍범도(대한독립군) 등 여러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청산리 일대의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맞섭니다.
1920년 10월 21일~26일, 약 6일간 10여 회의 전투를 벌여 독립전쟁 사상 최대 전과를 거둡니다. 백운평·완루구·천수평·어랑촌 전투가 대표적입니다. 김좌진 혼자가 아니라 홍범도 등 여러 부대가 연합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청산리 대첩 핵심 1920년 10월, 만주 청산리 김좌진(북로군정서) + 홍범도(대한독립군) 등 연합 약 6일간 10여 회 전투, 독립전쟁 최대 전과 "청산리 = 김좌진만" 은 불완전 — 홍범도도 참여!
청산리(10월) · 김좌진+홍범도 · 6일 10회 · 최대 전과
봉홍청김 — 봉오동=홍범도, 청산리=김좌진
승리 뒤의 비극 — 간도참변, 자유시참변
연이은 패배에 분노한 일본군은 독립군을 직접 이기지 못하자, 만주의 조선인 민간인을 학살합니다. 이것이 간도참변(경신참변, 1920년 10~12월)입니다. 수천 명이 학살되고 약 3,500호가 불탔습니다.
근거지를 잃은 독립군은 대한독립군단(총재 서일)을 결성하고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1921년 6월, 러시아 적군이 독립군에게 무장 해제를 요구하고 무력을 행사합니다 — 자유시참변(흑하사변). 독립군은 큰 타격을 받습니다.
간도=일본군 · 자유시=러시아 적군 · 가해자 바꿔 출제 주의!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 만주에서 다시 일어서다
자유시참변 이후 만주로 돌아온 독립군은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를 조직합니다. 이 3부는 군사 조직이면서 민정·사법·교육 기능까지 갖춘 자치 행정 기관이었습니다.
봉오동 전투(1920.6): 홍범도, 대한독립군, 최초 대승
청산리 대첩(1920.10): 김좌진+홍범도, 6일 10여 회, 최대 전과
간도참변(1920.10~12): 일본군 보복, 간도 한인 학살
대한독립군단 → 자유시 이동: 서일 총재, 밀산 집결
자유시참변(1921.6): 러시아 적군, 독립군 무장 해제
3부 성립(1920년대 중반): 참의부·정의부·신민부, 만주 재편
청산리 대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자유시참변은 일본군에 의해 독립군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핵심 용어
대한독립군
홍범도 사령관, 북간도, 봉오동 전투 주역
북로군정서
김좌진 사령관, 북간도, 청산리 대첩 주역
간도참변(1920)
가해자: 일본군, 장소: 만주 간도, 한인 민간인 학살
자유시참변(1921)
가해자: 러시아 적군, 장소: 러시아 자유시, 독립군 무장 해제
비교 정리
| 항목 | 봉오동 전투 | 청산리 대첩 |
|---|---|---|
| 시기 | 1920년 6월 | 1920년 10월 |
| 지휘 | 홍범도 (대한독립군) | 김좌진(북로군정서) + 홍범도 등 |
| 규모 | 1회 전투 | 6일 10여 회 |
| 전과 | 일본군 대파 (최초 대승) | 독립전쟁 최대 전과 |
봉(6)오동=홍범도 / 청(10)산리=김좌진(+홍범도) — 시기·지휘관 혼동 주의!
정리 노트
봉오동 & 청산리 핵심 정리
봉오동 전투(1920.6)
- 지휘
- 홍범도 (대한독립군)
- 결과
- 일본군 대파 — 독립전쟁 최초 대승
청산리 대첩(1920.10)
- 지휘
- 김좌진(북로군정서) + 홍범도 등 연합
- 기간
- 6일간 10여 회 전투
- 결과
- 독립전쟁 최대 전과
- 주의
- "청산리=김좌진만" 은 불완전 — 홍범도도 참여!
봉(6)홍 / 청(10)김 — 봉오동 6월 홍범도, 청산리 10월 김좌진(대표) 최초 대승=봉오동, 최대 전과=청산리 (혼동 금지!)
간도참변 & 자유시참변 — 두 비극
간도참변 (경신참변, 1920.10~12)
- 가해자
- 일본군 (청산리 패배 보복)
- 피해자
- 만주 간도의 조선인 민간인 수천 명 학살
- 결과
- 독립군 근거지 상실 → 밀산 집결
자유시참변 (흑하사변, 1921.6)
- 경위
- 대한독립군단(총재 서일) → 러시아 자유시 이동
- 가해자
- 러시아 적군 (무장 해제 강요, 무력 행사)
- 피해자
- 독립군 — 큰 인명 피해·무장 해제
간도참변=일본군 / 자유시참변=러시아 적군 (가해자 혼동 최빈출!) 자유시 이후 → 만주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 성립으로 재편
핵심 정리
- 1봉오동(6월)=홍범도, 청산리(10월)=김좌진+홍범도
- 2간도참변=일본군 보복, 자유시참변=러시아 적군
- 3대한독립군단(서일 총재) →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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