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요약노트
Ch.6 조선시대 (전기)
건국·세종·사화·임진왜란·병자호란
이 챕터의 내용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
4불가론, 과전법, 조선경국전 — 위화도의 결단에서 한양 천도까지, 조선 건국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갑니다.
말머리를 돌려 역사를 바꾸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안팎으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밖으로는 왜구가 해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안으로는 권문세족이 토지를 독점하여 백성들은 살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부류의 개혁파가 등장한다. 온건 개혁파(정몽주 등)는 "고려 안에서 고치자"는 입장이었고, 급진 개혁파(정도전, 조준 등)는 "아예 새 나라를 세우자"는 입장이었다.
- 88회군 → 91과전 → 92건국 → 94천도
- 정도전: 조선경국전(법), 경제문감(재상 중심), 불씨잡변(불교 비판)
- 정몽주: 온건 개혁파, 고려 유지 주장, 선죽교에서 피살
- 하여가 = 이방원, 단심가 = 정몽주
태종의 왕권 강화
6조직계제, 사병혁파, 호패법 — 태종의 피빛 정치 뒤에 숨겨진 조선 200년의 기반을 파헤칩니다.
피의 군주가 평화의 토대를 놓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건국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태조는 정도전의 추천으로 막내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한다. 정도전에게는 어린 왕이 올라야 재상 중심 정치를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398년, 이방원이 사병을 동원해 거사를 일으킨다. 1차 왕자의 난이다. 정도전과 세자 이방석이 피살된다. 하지만 왕위는 이방원이 아닌 형 이방과(정종)에게 돌아간다.
- 6조직계제 — 왕에게 권력 집중
- 사병 혁파 — 군사력 국가 귀속
- 호패법 — 인구 파악, 세금·군역 확보
- 사간원 독립 — 왕권 견제 장치
- 외척 제거 — 친인척도 예외 없음
세종의 문화와 과학
훈민정음, 측우기, 칠정산 — 애민 정신과 자주성이 만들어낸 세종 시대의 황금빛 업적들을 살펴봅니다.
백성을 위한 글자, 세계 최초의 우량계
세종은 아버지 태종과 다른 길을 걸었다. 6조직계제 대신 의정부서사제를 시행하여 신하들에게 정치를 맡기고, 자신은 학문과 연구에 시간을 쏟았다.
세종이 가장 아낀 기관은 집현전이다. 이름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세종이 이를 왕립 연구기관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정인지 등이 대표적 학자이다.
- 창제 1443, 반포 1446 (훈민정음)
- 측우기 1441 — 세계 최초 우량계
- 장영실 = 관노 출신 + 자격루 제작
- 칠정산 = 한양 기준 독자 역법
- 농사직설·향약집성방 = 자주적 실용 학문
- 갑인자(세종) vs 계미자(태종)
세종의 영토 확장과 대외 정책
4군 6진, 대마도 정벌, 공법 — 영토·외교·세금 개혁을 동시에 이룬 세종의 대외 전략을 살펴봅니다.
때리고 당근, 왜구를 무역 파트너로
1419년, 세종 즉위 직후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7,000명으로 대마도를 공격한다. 실질적으로는 태종(상왕)이 주도한 작전이었다.
대마도 정벌 후 조선은 왜인들에게 세 개의 항구(삼포)를 열어준다. 부산포, 제포(진해), 염포(울산)이다. 군사적으로 혼내고, 합법적 무역 경로를 만들어 약탈을 막는 전략이었다.
- 대마도 정벌(1419) = 이종무 → 삼포 개항 + 계해약조(1443)
- 4군 = 최윤덕 = 압록강 상류 (세조 때 폐지)
- 6진 = 김종서 = 두만강 하류 (유지)
- 공법 = 연분9등법(풍흉) + 전분6등법(비옥도)
- 명나라 = 형식적 사대 + 실질적 자주(훈민정음, 칠정산, 4군 6진)
세조의 왕권 강화와 직전법
계유정난, 6조직계제 부활, 직전법 — 세조의 피빛 권력과 제도적 유산을 함께 살펴봅니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삼촌의 철퇴
세종이 돌아가시고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12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문종은 황보인, 김종서 같은 고명대신에게 보필을 부탁했다.
1453년,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직접 김종서의 집에 찾아가 철퇴로 내리친다. 이것이 계유정난이다. 김종서, 황보인 등 고명대신을 제거하고 영의정에 올라 권력을 장악한다. 핵심 참모는 한명회, 권람.
- 계유정난(1453) → 세조 즉위(1455) → 사육신(1456) → 단종 사사(1457)
- 6조직계제 부활 + 집현전 폐지 + 경연 축소 = 왕권 강화 3종 세트
- 직전법(1466) =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
- 경국대전: 세조가 시작, 성종이 완성(1485)
- 단종 복위 = 숙종 때
성종과 경국대전 완성
경국대전과 3사 — 법전으로 틀을 잡고, 언론 기관으로 권력을 견제한 성종의 통치 전략을 따라가 봅시다.
법치의 완성자 사림의 문을 열다
세조의 손자 자을산군은 13세에 즉위하여, 정희왕후(세조의 비)의 수렴청정을 7년간 받습니다.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이었습니다.
20세에 친정을 시작한 성종의 가장 큰 업적 — 경국대전 반포(1485). 세조 때 시작된 편찬을 마무리하여,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적용되는 최고 법전을 완성합니다.
- 경국대전(1485): 세조 착수 → 성종 완성, 6전 체계
- 홍문관 설치로 3사 체제 완성 (사헌부+사간원+홍문관)
- 사림 등용(김종직), 관수관급제(수조권→녹봉 전환)
- 법전 순서: 성(경국대전)·영(속대전)·정(대전통편)·고(대전회통)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 같은 왕(연산군) 때 벌어졌지만, 원인과 피해 세력이 전혀 다릅니다. 그 차이를 정확히 잡아봅시다.
사초에 적힌 분노 피바람의 시작
사화(士禍)란 "선비에게 내린 화"입니다. 조선 전기에 네 번의 대규모 사화가 일어납니다.
무오사화의 도화선은 조의제문(弔義帝文)입니다. 김종직이 쓴 이 글은 표면상 중국 초나라 의제를 추모하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세조의 단종 폐위를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 조의제문: 작성=김종직, 수록=김일손, 고발=유자광
- 무오사화(1498): 사림만 피해 / 갑자사화(1504): 훈구+사림 모두
- 중종반정(1506): 박원종 등이 연산군 폐위
- 사림 재기 비결: 서원 + 향약 + 학맥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 하나는 개혁의 좌절이고, 하나는 외척의 다툼입니다. 같은 '사화'라도 구도가 전혀 다릅니다.
개혁가의 좌절 외척의 피바람
중종은 반정 공신들에 의해 옹립된 왕이라 독자적 왕권이 약했습니다. 공신을 견제할 인물로 등장한 것이 김굉필의 제자 조광조입니다.
현량과 · 소격서 · 위훈 삭제 · 향약
- 조광조 4대 개혁: 현량과, 소격서 폐지, 위훈 삭제, 향약 보급
- 기묘사화(1519): 주초위왕 + 훈구 반발 → 조광조 사사
- 을사사화(1545): 대윤 vs 소윤 (외척 대립, 훈구 vs 사림 아님!)
- 최초 서원 = 백운동서원(주세붕), 최초 사액 = 소수서원(이황)
붕당정치의 시작
이조전랑 — 정5품에 불과한 자리가 왜 조선 정치의 핵심이었는지, 그 이유를 알면 붕당정치가 보입니다.
조선 정치판 드디어 쪼개지다
이조전랑 — 정5품밖에 안 되는 낮은 관직이지만, 후임자 추천권(자대권)과 3사 인사 추천권(통청권)을 가진 핵심 청요직이었습니다.
1575년(선조 8년), 이 자리를 두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충돌합니다. 단순한 두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뒤에 있는 사림 전체가 갈라졌습니다.
- 동서 분당(1575): 이조전랑 → 김효원(동) vs 심의겸(서)
- 동인=이황·영남, 서인=이이·기호 (절대 혼동 금지!)
- 기축옥사(1589): 정철(서인)이 동인 숙청
- 동인 분화: 남인(온건·이황) vs 북인(강경·조식)
임진왜란 발발과 전반기
통신사 보고의 엇갈림 — 서인 황윤길은 위험을 경고했고, 동인 김성일은 안전하다 했습니다. 당파 논리가 국방을 삼킨 순간입니다.
20일 만에 한양이 뚫린 날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사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명나라를 치겠다"며 조선에 정명가도(征明假道) — "명을 칠 테니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조선은 일본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통신사(1590)를 보내지만, 돌아온 두 사람의 보고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 통신사: 황윤길(서인·위험) vs 김성일(동인·안전)
- 임진왜란 1592, 20일 만에 한양 함락, 선조 의주 파천
- 전세 역전 3요인: 수군(이순신) + 의병 + 명군(이여송)
- 인물-장소: 정발=부산, 송상현=동래, 신립=탄금대
이순신과 해전
학익진과 울돌목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두 전쟁의 해전을 구별하는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다 위의 전설 13척의 기적
이순신은 32세에 무과 급제, 여진족 토벌에서 활약했지만 파직과 복직을 반복한 굴곡진 관료였습니다.
류성룡의 천거로 종9품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발탁된 파격 인사 — 이것이 조선 수군 전설의 시작입니다.
- 옥포(1592.5) = 첫 승리
- 사천(1592.5) = 거북선 첫 실전
- 한산도(1592.7) = 학익진, 3대 대첩
- 칠천량(1597.7) = 원균, 대패
- 명량(1597.9) = 13척, 정유재란
- 노량(1598.11) = 전사, 마지막 해전
- 판옥선 = 주력(평저선, 포격), 거북선 = 돌격선(소수)
- 한산도(1592, 임진) = 학익진 vs 명량(1597, 정유) = 울돌목
- 칠천량 = 원균 = 대패, 노량 = 이순신 전사 = 마지막 해전
의병과 관군의 반격
의병장-지역 매칭과 3대 대첩 지휘관 — 시험에서 가장 자주 바꿔놓는 함정이 여기 숨어있습니다.
백성이 나라를 구하다
의병은 나라의 명령 없이 스스로 일어난 민간 군사입니다. 주로 지방의 양반·유생(사림)이 지휘하고, 농민·노비·승려가 병사로 참여했습니다.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곽재우입니다. 1592년 4월, 경상도 의령에서 붉은 옷을 입고 싸워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습니다.
- 곽재우 = 최초 의병 = 홍의장군 = 경상도 의령
- 3대 대첩: 한산도=이순신, 진주=김시민, 행주=권율
- 전세 역전 3요소: 수군 + 의병 + 명군 참전
정유재란과 임진왜란의 결과
비변사 강화, 훈련도감, 공명첩 — 이 세 키워드가 전후 조선의 변화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조선이 치른 대가
1593년 명과 일본의 강화 협상이 결렬됩니다. 히데요시의 황당한 요구 — "조선 남부 4도를 넘겨라" — 에 협상은 깨지고, 1597년 일본군이 다시 침략합니다. 이것이 정유재란입니다.
정유재란 직전, 일본의 이간책에 속은 조정이 이순신을 파직·투옥하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합니다.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궤멸합니다.
- 칠천량 = 원균 = 대패, 명량 = 12척 = 정유재란
- 비변사 강화 → 의정부·6조 약화, 훈련도감(선조) 설치
- 공명첩 = 신분제 동요, 도자기 전쟁 = 도공 납치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인조반정
대동법 1608, 중립외교, 인조반정 1623 — 이 세 사건이 하나의 인과 사슬로 이어집니다.
실리를 택한 왕 명분에 무너지다
광해군은 선조의 서자(후궁 소생)로, 임진왜란 때 분조(分朝)를 이끌며 의병 모집과 군량 확보 등 전시 지도자 역할을 합니다.
즉위 후 가장 중요한 업적이 대동법(1608) 시행입니다. 기존 공납(특산물 현물)의 폐단인 방납을 없애고, 쌀(1결당 12두)로 통일하여 납부하게 했습니다.
- 대동법 최초 = 1608 경기도(이원익), 전국 = 1708 숙종
- 광해군 = 중립외교(실리) vs 인조 = 친명배금(명분)
- 인조반정(1623) = 서인 주도 → 친명배금 → 호란 초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형제 vs 군신, 강화도 vs 남한산성 — 두 호란의 핵심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에서 군신으로 삼전도의 치욕
인조반정(1623) 이후 조선은 친명배금 정책을 펼칩니다. 여기에 이괄의 난(1624) 잔당이 후금으로 도주하여 조선의 내부 사정을 알려줍니다.
1627년, 후금의 아민이 3만 대군으로 침공합니다 — 정묘호란.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합니다.
- 정묘호란 = 형제(강화도), 병자호란 = 군신(남한산성)
- 최명길 = 주화파, 김상헌 = 척화파
- 북벌론 = 효종 + 송시열 (실현 안 됨)
조선 전기의 경제 제도
과전법→직전법→관수관급제 — 이 세 단어만 순서대로 기억하면 토지 제도 변천의 핵심을 잡은 것입니다.
땅을 다스리는 자가 나라를 다스린다
조선은 농본주의 국가입니다. 농업이 근본이고 상업·공업은 억제하는 억상정책이 기본 방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경제 제도의 핵심은 결국 토지입니다. 누가 토지를 갖고, 어떻게 세금을 거두느냐가 나라 운영의 전부였습니다.
- 과전법: 1391, 전·현직, 수조권(소유권 아님!)
- 직전법: 1466, 세조, 현직만
- 관수관급제: 성종, 국가 수조 (세조 아님!)
- 전세: 토지 기준 · 연분9등(풍흉)·전분6등(비옥도)
- 공납: 가구 기준 · 방납 폐단 → 대동법으로 해결
- 요역: 16~60세 · 노동력 · 6일 원칙
- 양인개병제: 원칙=양인 전체, 실제=상민만
- 농사직설: 세종·정초 / 금양잡록: 성종·강희맹
조선 전기의 사회 구조
서원 vs 향교, 유향소 vs 경재소 — 이 두 쌍의 위치와 성격을 구분하면 향촌 사회 문제의 80%를 풀 수 있습니다.
양반이 다 같은 양반이 아니었다
조선은 크게 네 개의 신분층 —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나뉘었습니다. 법적으로 고정된 건 아니었지만, 사실상 세습이었습니다.
서얼(양반 첩의 자녀)은 양반 혈통이지만 중인 대우! 서얼=양반으로 속이는 선지 주의
- 유향소(지방 자치) ↔ 경재소(중앙 통제)
- 서원(사립, 주세붕 백운동서원) ↔ 향교(관립)
- 향약(4대 덕목, 조광조 보급)
- 전기: 균등 상속, 남귀여가혼, 윤회봉사
- 후기: 장남 상속, 친영례, 장남 제사 독점
[시험특강] 조선 왕 업적 총매칭
왕 이름·제도·인물을 서로 바꿔놓는 것이 출제자의 기본 전략. 원 포인트 키워드를 확실히 박아둡시다.
왕 이름만 들으면 업적이 튀어나와야 한다
정종(1398~1400)은 시험에 거의 안 나옵니다. 핵심은 개경 환도 — 한양 천도가 아니라 개경으로 돌아간 것!
4군 = 최윤덕, 6진 = 김종서 — 바꿔놓는 문제가 정말 자주 나옵니다!
- 태조: 건국 + 과전법 (과전법 ≠ 현직만)
- 태종: 왕권강화 + 6조직계 (6조직계는 태종+세조)
- 세종: 훈민정음 + 의정부서사제 (서사제 ≠ 왕권강화)
- 세조: 직전법 + 경국대전 착수 (완성은 성종!)
- 성종: 경국대전 완성 + 홍문관 (착수는 세조!)
- 연산군: 무오+갑자 사화 (갑자만 훈구도 피해)
- 중종: 기묘사화 + 조광조 (현량과 = 조광조)
- 명종: 을사사화 + 문정왕후 (을사 = 외척 싸움)
- 선조: 동서분당 + 임진왜란 (심의겸=서인, 김효원=동인)
[시험특강] 4대 사화 완전 비교
갑자사화만 훈구도 피해, 을사사화는 외척 싸움 — 이 두 가지만 기억해도 사화 문제의 절반은 맞힙니다.
사화 문제 더 이상 틀리지 마라
사화(士禍) = "선비에게 닥친 재앙". 조선 전기에 훈구파가 사림파를 공격한 사건이지만, 4개가 전부 같은 구조는 아닙니다.
무오사화(1498) — 사관 김일손이 사초에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수록. 세조의 왕위 찬탈을 간접 비판한 글입니다. 훈구파 유자광이 고발해 사림이 숙청됩니다.
- 갑자사화만 훈구도 피해
- 을사사화는 외척 간 싸움
- 사화 순서: 무오→갑자→기묘→을사
- 사림 부활 무기: 서원 + 향약
- 암기 구결: "무릎 꿇고 갑옷 입고 기도하며 을부짖다"
핵심 용어 모음
제1불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 (소국 vs 대국)
제2불가
여름 농번기에 출병하면 농사를 망침
제3불가
원정 사이 왜구가 침입할 수 있음 (후방 공백)
제4불가
장마철이라 활의 아교가 풀어져 무기 사용 불가
시행 시기
1391년 (조선 건국 1년 전!)
대상 지역
경기 지역 토지
지급 기준
관리의 등급(과)에 따라 차등 지급
핵심 목적
권문세족 경제 기반 해체 + 신진사대부 경제 기반 마련
수조권
전·현직 관리에게 수조권 지급
정치
재상 중심 정치 —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법률
조선경국전 편찬 — 조선 최초의 법전 (사찬)
행정
경제문감 — 재상의 역할과 권한 강조
비교 정리
| 항목 | 한산도 대첩 | 명량 해전 |
|---|---|---|
| 연도 | 1592년 7월 | 1597년 9월 |
| 전쟁 | 임진왜란 | 정유재란 |
| 전법 | 학익진 (넓은 바다) | 좁은 해협 + 조류 이용 |
| 의의 | 서해 진출 차단 | 수군 재건의 기적 |
| 항목 | 한산도 대첩 | 행주 대첩 |
|---|---|---|
| 지휘관 | 이순신 | 권율 |
| 유형 | 해전 | 성곽 방어전(육전) |
| 전법 | 학익진 | 화차 + 산성 방어 |
| 항목 | 임진왜란 | 정유재란 |
|---|---|---|
| 시기 | 1592~1593 | 1597~1598 |
| 원인 | 일본의 조선 침략 | 강화 협상 결렬 |
| 수군 | 이순신 연전연승(한산도) | 원균 대패 → 이순신 복귀(명량·노량) |
| 항목 | 광해군 | 인조 |
|---|---|---|
| 외교 노선 | 중립외교(실리) | 친명배금(명분) |
| 집권 세력 | 대북파 | 서인 |
| 후금 관계 | 충돌 회피 | 적대 → 호란 초래 |
| 항목 | 정묘호란 | 병자호란 |
|---|---|---|
| 시기 | 1627년 | 1636~1637년 |
| 침입국 | 후금 | 청 |
| 피난지 | 강화도 | 남한산성 |
| 결과 | 형제 관계 | 군신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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