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6 조선시대 (전기)

세종의 영토 확장과 대외 정책

4군(최윤덕)과 6진(김종서)의 차이를 정확히 구별한다대마도 정벌과 삼포 개항의 관계를 파악한다공법(연분9등법+전분6등법)의 내용을 이해한다

북쪽의 여진, 남쪽의 왜구를 동시에 잡다

세종은 문화·과학만 잘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최윤덕과 김종서를 보내 북방 영토를 넓히고, 이종무에게 대마도를 치게 했습니다. 현재 한반도 북쪽 국경선의 기원이 여기 있습니다.

정복한 땅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것은 과연 우리 영토인가?

4군 6진, 대마도 정벌, 공법 — 영토·외교·세금 개혁을 동시에 이룬 세종의 대외 전략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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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때리고 당근, 왜구를 무역 파트너로

1419년, 세종 즉위 직후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7,000명으로 대마도를 공격한다. 실질적으로는 태종(상왕)이 주도한 작전이었다.

대마도 정벌 후 조선은 왜인들에게 세 개의 항구(삼포)를 열어준다. 부산포, 제포(진해), 염포(울산)이다. 군사적으로 혼내고, 합법적 무역 경로를 만들어 약탈을 막는 전략이었다.

삼포 = 부산포·제포·염포 · 계해약조(1443) = 대마도와의 무역 규정

대마도 정벌 = 1419년 = 이종무. 세종 초기이지만 실질적으로 태종(상왕)이 주도한 사업이다!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국경선을 긋다

조선 북쪽의 압록강·두만강 유역에는 여진족이 수시로 국경을 넘어 약탈했다. 세종은 서북과 동북, 두 방향에서 동시에 해결한다.

최대 함정: 4군=최윤덕=압록강, 6진=김종서=두만강. 인물과 지역을 바꿔서 출제하는 1순위 문제!

세종은 사민 정책도 시행한다. 삼남 지방(충청·전라·경상) 주민을 북방으로 강제 이주시켜 영토를 실효적으로 지배한 것이다. 현재 한반도 북쪽 국경선(압록강~두만강)의 기원이 바로 이 4군 6진이다.

4군-최윤덕-압록강-상류-폐지 / 6진-김종서-두만강-하류-유지

17만 명에게 의견을 묻다

기존 답험손실법은 관리가 농지에 가서 수확량을 눈대중으로 파악하는 방식이라 부정부패가 심했다. 세종은 이를 개선해 공법을 시행한다.

세종은 공법 시행 전 전국 약 17만 명에게 찬반을 물었다. 조선 시대에 민의를 반영한 매우 드문 사례이다.

연분9등 = 풍흉(연도별) · 전분6등 = 토지(비옥도) — 숫자와 기준 매칭!

형식적 사대, 실질적 자주

과전법 (1391): 경기 토지, 전·현직 수조권

공법 (세종): 연분9등법 + 전분6등법

직전법 (세조):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

관수관급제 (성종): 국가가 직접 거두어 지급

4군을 설치한 인물은 김종서이다.

공법에서 연분9등법의 기준은?

다음 중 삼포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key

핵심 용어

4군

최윤덕 · 압록강 상류(서북) · 세조 때 폐지

6진

김종서 · 두만강 하류(동북) · 계속 유지

연분9등법

그 해의 풍흉(수확량)을 9등급으로 나눔

전분6등법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으로 나눔

edit_note

정리 노트

세종의 영토 확장과 대외 정책

대외 정책

대마도 정벌 (1419)
이종무, 실질 주도 = 태종(상왕)
삼포 개항
부산포·제포·염포 — 계해약조(1443)
4군
최윤덕 · 압록강 상류(서북) · 세조 때 폐지
6진
김종서 · 두만강 하류(동북) · 계속 유지
사민 정책
삼남 주민을 북방으로 강제 이주

공법 (세금 개혁)

연분9등법
그 해의 풍흉(수확량)을 9등급으로
전분6등법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으로

4군=최윤덕=압록강 / 6진=김종서=두만강 — 인물·지역 바꿔 출제하는 1순위 함정! 연분9등=풍흉(연도별) / 전분6등=비옥도(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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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1대마도 정벌(1419) = 이종무 → 삼포 개항 + 계해약조(1443)
  • 24군 = 최윤덕 = 압록강 상류 (세조 때 폐지)
  • 36진 = 김종서 = 두만강 하류 (유지)
  • 4공법 = 연분9등법(풍흉) + 전분6등법(비옥도)
  • 5명나라 = 형식적 사대 + 실질적 자주(훈민정음, 칠정산, 4군 6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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