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6 조선시대 (전기)
붕당정치의 시작
조선 정치판 드디어 쪼개지다
선조 때 사림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이제 대립은 훈구 vs 사림이 아니라 사림 내부에서 벌어집니다. 이조전랑이라는 작은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조선 정치의 판도를 영구히 바꿔놓습니다.
동인과 서인은 무엇이 달랐는가?
이조전랑 — 정5품에 불과한 자리가 왜 조선 정치의 핵심이었는지, 그 이유를 알면 붕당정치가 보입니다.
핵심 내용
조선 정치판 드디어 쪼개지다
이조전랑 — 정5품밖에 안 되는 낮은 관직이지만, 후임자 추천권(자대권)과 3사 인사 추천권(통청권)을 가진 핵심 청요직이었습니다.
1575년(선조 8년), 이 자리를 두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충돌합니다. 단순한 두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뒤에 있는 사림 전체가 갈라졌습니다.
왜 '동인'이고 '서인'인가? 정치 이념이 아니라 한양 내 거주 위치 기준입니다. * 김효원 측 → 한양 동쪽(건천동) 거주 → 동인 * 심의겸 측 → 한양 서쪽(정릉 방면) 거주 → 서인
이조전랑 · 1575 · 김효원(동인) · 심의겸(서인)
학통과 지역이 다르다
분당 초기에 이이(율곡)가 조제보합론 — 양쪽 화합을 시도했지만, 1584년 이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중재자가 사라지고 대립은 격화됩니다.
이황=동인 · 이이=서인 · 조제보합론
동인이 다시 둘로 갈라지다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이 터집니다. 서인의 정철이 위관(수사 책임자)이 되어 동인 1,000여 명을 연루시켜 숙청합니다. 이것이 기축옥사입니다.
기축옥사 이후, 정철을 어떻게 처벌할지를 두고 동인 내부가 갈라집니다.
이후 정철이 광해군 세자 책봉을 건의한 건저의 문제로 유배되고, 서인이 밀려나면서 북인이 집권하게 됩니다.
정여립 모반 1589 · 기축옥사 · 남인(온건) · 북인(강경)
상호 견제의 두 얼굴
순기능 * 상호 비판·견제 (독주 방지) * 공론 정치 (여론 반영) * 학문적 발전 (학통 간 논쟁) * 언론 기능 강화 (3사 왕권 견제)
역기능 * 당파 싸움 격화 (정책 < 당파 이익) * 보복 정치 (집권 시 상대 숙청) * 인재 낭비 (능력 < 소속) * 정국 불안정 (잦은 정권 교체)
1575: 동서 분당
1584: 이이 사망
1589: 정여립 모반
1591: 동인 분화
75분당 · 89모반 · 91분화
동인은 이이(율곡)의 학통을 이은 기호 지방 사림이 중심이다
동서 분당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붕당정치의 시작 완료!
핵심 용어
학통
이황(퇴계)·조식(남명)
지역
영남(경상도)
성향
상대적 개혁
핵심
김효원, 류성룡, 이발
남인(온건)
정철 처벌 온건 · 이황 계열 · 류성룡
북인(강경)
정철 강력 처벌 · 조식 계열 · 이산해
정리 노트
붕당정치의 시작 — 동인과 서인
동서 분당 (1575)
- 직접 원인
- 이조전랑 인사 문제 — 김효원 vs 심의겸
- 동인
- 이황·조식 학통 · 영남(경상도) · 개혁적
- 서인
- 이이·성혼 학통 · 기호(경기·충청) · 보수적
- 이이의 역할
- 조제보합론 — 화합 시도, 1584년 사망 후 대립 격화
동인의 분화
- 기축옥사 (1589)
- 정여립 모반 → 정철(서인)이 동인 1,000여 명 숙청
- 남인 (온건)
- 정철 처벌 온건 · 이황 계열 · 류성룡
- 북인 (강경)
- 정철 강력 처벌 · 조식 계열 · 이산해
동인=이황·영남 / 서인=이이·기호 — 절대 혼동 금지! 동서 분당(1575) → 이이 사망(1584) → 기축옥사(1589) → 동인 분화(1591)
핵심 정리
- 1동서 분당(1575): 이조전랑 → 김효원(동) vs 심의겸(서)
- 2동인=이황·영남, 서인=이이·기호 (절대 혼동 금지!)
- 3기축옥사(1589): 정철(서인)이 동인 숙청
- 4동인 분화: 남인(온건·이황) vs 북인(강경·조식)
퀴즈와 인터랙션으로 더 깊이 학습하세요
play_circle인터랙티브 레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