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체제 정비 — 신문왕의 왕권 강화
신문왕이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진골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했다.
녹읍 폐지·관료전 지급·국학 설립·9주 5소경·9서당 10정이 한 묶음. 하나라도 빠지면 오답 골라내기 어렵다.
676년 기벌포 해전 승리로 삼국통일이 완성되자, 전쟁을 치른 무열왕계는 통일 국가 운영의 과제에 직면한다. 681년 즉위한 신문왕이 장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며 진골 세력을 대거 숙청, 왕권 강화의 분수령을 만든다.
| 분야 | 신문왕의 개혁 | 의미 |
|---|---|---|
| 토지 | 관료전 지급(687) / 녹읍 폐지(689) | 귀족의 인신 지배 차단, 왕권 강화 |
| 교육 | 국학 설립(682) | 유학 관료 양성 |
| 군사 | 9서당 10정 완비 | 중앙 9서당(민족 화합) + 지방 10정 |
| 행정 | 9주 5소경 완성 | 수도 편중 완화 |
| 의례 | 감은사·만파식적 | 호국 이념 집약 |
녹읍 vs 관료전 — 녹읍은 토지+농민 노동력을 함께 주는 형태(귀족의 사민 지배 가능), 관료전은 수조권만 주는 형태. 신문왕이 녹읍을 없애고 관료전으로 바꾼 것이 왕권 강화의 핵심 재정 조치. 단, 경덕왕 때 녹읍이 부활(757)한다는 점이 뒤집기 함정.
9주 5소경 — 9주는 옛 삼국 영토를 각 3주씩 배분(고구려·백제·신라 각 3). 5소경(국원·중원·서원·남원·북원)은 수도 경주의 지리적 편중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 지방 귀족 자제를 소경에 머물게 한 상수리 제도도 기억할 것.
| 토지제도 | 시기·왕 | 특징 |
|---|---|---|
| 관료전 | 신문왕 687 | 수조권만, 퇴직 시 반납 |
| 정전 | 성덕왕 722 | 일반 백성에게 지급, 조 납부 |
| 녹읍 부활 | 경덕왕 757 | 귀족 반발 무마 → 쇠퇴의 씨앗 |
신문왕은 687년 관리에게 ______ 을 지급하고, 689년에는 ______ 을 폐지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신문왕은 지방 행정구역으로 9주 5소경을 완비했다.
통일신라의 중앙군 9서당 중 고구려·백제·말갈 출신까지 포함시킨 의의는?
통일신라 신문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① 국학을 폐지하고 태학을 설치했다. ② 녹읍을 부활시켜 귀족의 경제 기반을 강화했다. ③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관료전을 지급했다. ④ 상대등을 신설하여 귀족 회의를 주재케 했다. ⑤ 9주 5소경 대신 9도제를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