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 해동성국의 건국과 멸망
대조영이 세운 발해(698~926)는 '해동성국'으로 불린 만주의 대국.
고구려 계승 근거·5경 15부 62주·해동성국·거란 멸망 네 포인트가 고정. 통일신라 9주5소경과 대구로 묻는다.
고구려 멸망 30년 뒤인 698년, {{daejoyeong|대조영}}이 동모산(현 지린성 둔화)에서 발해를 건국한다. 초기 국호는 '진국(震國)', 713년 당이 '발해군왕'을 책봉하며 '발해'로 통용.
| 왕 | 업적 |
|---|---|
| 고왕 대조영(698~719) | 동모산에서 건국, 당과 화해 |
| 무왕 대무예(719~737) | 장문휴의 당 산둥반도(등주) 공격(732), 연호 '인안' |
| 문왕 대흠무(737~793) | 상경 용천부 천도, 당 문물 수용, 연호 '대흥' |
| 선왕 대인수(818~830) | 해동성국 별칭, 5경 15부 62주 완비 |
| 마지막 대인선 | 926 거란(요) 야율아보기에 의해 멸망 |
고구려 계승의 5가지 근거 — ①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국왕' 자칭 ② 일본이 '고려' 로 호칭 ③ 지배층 다수 고구려인 ④ 온돌·석등·연화무늬 등 고구려 양식 계승 ⑤ 대조영 본인이 고구려 유민. 피지배층은 말갈계가 다수.
| 제도 | 통일신라 | 발해 |
|---|---|---|
| 중앙 | 집사부 + 14부 | 3성 6부(정당성 중심, 이원적) |
| 지방 | 9주 5소경 | 5경 15부 62주 |
| 군사 | 9서당 10정 | 10위 |
| 수도 | 경주 | 상경 용천부 |
| 수용 | 당 직수용 | 당 제도를 자주적으로 변형 |
3성 6부의 특징 — 이름은 당의 3성 6부지만 운영은 독자적. 정당성(정책 결정) 아래 좌사정·우사정으로 6부를 이원 통할, 충·인·의·지·예·신부로 유교 이름을 썼다. 당 모방이 아닌 변형 수용인 점이 시험 포인트.
대조영 심화
건국 과정과 당·돌궐 외교.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불린 전성기의 왕은?
발해의 중앙 관제는 3성 6부제로 당 제도를 그대로 모방했다.
발해의 무왕은 732년 장수 ______ 을 보내 당의 ______ 지방을 공격했다.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국왕' 을 자칭했다.
발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대조영이 698년 지린성 동모산에서 건국하였다. ② 무왕은 연호를 '대흥'으로 정하고 당과 친선관계를 맺었다. ③ 문왕은 장문휴를 보내 당 산둥지방을 공격했다. ④ 선왕 때 해동성국이라 불리고 9주 5소경을 정비했다. ⑤ 발해는 당의 3성 6부제를 그대로 모방하여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