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벌귀족의 동요 —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인종 때 이자겸(1126)과 묘청(1135)의 난이 문벌 체제를 뒤흔들었다.
신채호의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묘청) 인용이 고정. 서경/개경파 대립 구도를 외울 것. 두 난 모두 무신정변(1170) 직전 왕권 약화의 구조적 배경임.
고려 중기 문벌 귀족이 권력을 독점하자, 왕권과 결탁한 외척 세력이 폭주했다. 경원 이씨(이자겸)가 왕의 외조부·장인을 겸하며 실권 장악, 1126년 척준경과 난을 일으켰다(이자겸의 난).
| 구분 | 이자겸의 난 | 묘청의 난 |
|---|---|---|
| 연도 | 1126 | 1135~1136 |
| 인물 | 이자겸(외척)·척준경 | 묘청·정지상(서경파) |
| 배경 | 인종의 외조부+장인 겸직, 권력 독점 | 서경 천도·풍수도참·자주 외교 주장 |
| 주요 주장 | — | 서경 천도·황제 칭호(칭제건원)·금국 정벌 3대 구호 |
| 국호·연호 | — | 국호 '대위(大爲)', 연호 '천개(天開)' |
| 결과 | 척준경이 이자겸 배신·축출, 왕 독살 시도 실패 | 김부식 관군에 1년 만에 진압 |
| 의의 | 외척 문벌의 자멸, 왕권 약화 | 자주파 패배, 사대 유교 노선 강화 |
서경파 vs 개경파 — 묘청(서경, 풍수·자주·금 정벌·칭제건원) vs 김부식(개경, 유교·사대·현상유지).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이를 낭가·불교 ↔ 유교 사대 의 싸움으로 해석, 묘청의 난 실패가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이라 평했다.
이자겸(李資謙) — 경원 이씨. 딸 둘을 인종에게 시집보내 왕의 외조부이자 장인을 동시에 역임. 1122년 첫 혼인 주도, 1126년 척준경과 함께 반란. 척준경이 이자겸을 역으로 배신하며 실패. 문벌귀족 권력의 자멸을 상징.
김부식 — 묘청 진압 후 『삼국사기』(1145) 편찬. 기전체·유교 사관으로 신라 중심 서술. 이 책이 한국 현존 최고(最古) 정사.
묘청이 내세운 국호와 연호는?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이라 평가했다.
이자겸의 난(1126)에서 이자겸을 배신하고 축출한 인물은?
묘청이 주장한 3대 구호는 ______·______·금국 정벌이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이자겸의 난(1126)은 서경 세력이 일으킨 반란이었다. ②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개경 천도를 주장했다. ③ 이자겸은 척준경의 배신으로 제거되었다. ④ 묘청의 난은 김부식이 지원하여 성공했다. ⑤ 두 난 모두 무신들이 주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