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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 전쟁 (648~668)
나당동맹 → 백제 멸망(660) → 백강 전투(663) → 고구려 멸망(668).
#통일전쟁#황산벌#백강#빈출
왜 배우는가
황산벌·백강 전투는 매회 출제. 나당동맹의 배경과 각 전투의 결과를 연결해야 한다.
7세기 중반, 고구려의 거듭된 수·당 격퇴와 백제의 신라 압박은 한반도 삼각구도를 한계까지 몰아갔다. 김춘추(태종무열왕)가 당으로 건너가 나당동맹을 성사시키며(648) 통일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 연도 | 사건 | 주요 인물·결과 |
|---|---|---|
| 648 | 나당동맹 | 김춘추-당 태종. 평양 이남 신라 약속 |
| 660 | 황산벌 전투 | 김유신 vs . 계백 전사 |
| 660 | 사비 함락 | 의자왕 항복, 백제 멸망 |
| 663 | 백강 전투 | 나당 vs 왜·백제 부흥군. 왜군 대패 |
| 668 | 평양성 함락 | 연개소문 사후 내분, 고구려 멸망 |
백강 전투(663)의 의미 — 백제 부흥군(복신·도침·흑치상지)이 왜에 지원을 요청, 4만 왜군이 금강 하구에서 나당 연합군과 격돌. 왜군 400여 척 소실. 이 패배로 백제 부흥운동은 사실상 종결되고, 일본은 규슈에 방어시설(수성·산성)을 대거 축조하며 고립 정책으로 전환.
연개소문과 고구려 멸망 — 연개소문은 수·당 격퇴의 주역이었으나, 사후(665) 세 아들(남생·남건·남산) 간 내분으로 남생이 당에 투항. 이 내분이 곧 668년 평양성 함락의 결정타였다.
실기 드릴 3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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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황산벌에서 김유신과 맞서 전사한 백제 장군은?
check_circle실기 드릴 · OX
백강 전투에서 왜군과 백제 부흥군이 승리했다.
space_bar실기 드릴 · 빈칸 채우기
나당동맹은 ______년에 체결되었고, 백제는 ______년, 고구려는 ______년에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