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관계 — 거란·여진과의 전쟁
세 차례 거란 침입을 격퇴(강동 6주·귀주대첩)하고 여진 정벌 후 9성 개척.
서희 강동 6주·강감찬 귀주대첩·윤관 동북 9성이 고정 3종 세트.
10~11세기 고려는 북방의 거란(요)·여진(금)과 차례로 대결했다. 세 차례 거란 침입은 모두 격퇴했고, 여진은 예종 때 윤관의 별무반으로 제압했다.
| 전쟁 | 연도 | 주역 | 결과 |
|---|---|---|---|
| 거란 1차 | 993 | {{seohui|서희}} 외교담판 | 강동 6주 획득(압록강까지) |
| 거란 2차 | 1010 | 양규 | 개경 함락, 현종 몽진 후 격퇴 |
| 거란 3차 | 1018~19 | {{ganggamchan|강감찬}} | 귀주대첩(1019) 완승 |
| 여진 정벌 | 1107 | 윤관의 별무반 | 동북 9성 축조 (1109 반환) |
| 여진 → 금 | 1115 건국 | 1125 금이 사대 요구, 수용 |
서희 외교담판(993) — 거란 소손녕이 '고구려 옛 땅을 돌려달라'고 하자, 서희는 오히려 '고려가 고구려 계승국이며 압록강 동쪽은 여진이 막고 있어 교류가 어렵다'고 반박, 강동 6주(흥화·용주·통주·철주·귀주·곽주) 를 얻어낸다. 무력 충돌 없이 영토 획득.
귀주대첩(1019) — 강감찬이 소배압의 10만 거란군을 귀주에서 섬멸. 퇴각한 병사가 수천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송·거란이 균형을 이루는 동아시아 평화기가 1세기 지속.
천리장성(1033~1044) — 압록강 하구~도련포. 거란·여진 방비용. 고구려 천리장성(부여성~비사성)과 구별할 것.
서희 심화
담판의 논리와 강동 6주의 지리적 의미.
993년 거란 소손녕과의 외교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한 인물은?
강감찬은 1019년 귀주대첩에서 여진의 침입을 격퇴했다.
예종 때 ______ 은 신기·신보·항마군으로 편제된 ______ 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 동북 9성을 쌓았다.
고려 전기 북방 대외 항쟁을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시오. 가. 서희의 외교담판(강동 6주 획득) 나. 강조의 정변과 거란 2차 침입(현종 나주 피난) 다. 강감찬의 귀주대첩 라. 윤관의 별무반으로 여진 정벌·동북 9성 축조 마. 동북 9성 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