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개항기와 대한제국
국권 피탈 과정
조약 하나하나에 나라가 무너지다
1905년 11월, 경운궁에 일본군이 배치되고 이토 히로부미가 대신들을 위협합니다. 한 장의 조약으로 외교권이 사라지고, 이어 군대가, 사법권이, 그리고 마침내 나라 전체가 사라집니다.
빼앗긴 주권은 되돌릴 수 있었을까?
외교권, 군대, 사법권, 주권 — 하나씩 빼앗겨 간 대한제국의 참담한 기록을 따라갑니다.
핵심 내용
외교권을 빼앗기다 을사늑약, 1905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미국), 제2차 영일동맹(영국), 포츠머스 조약(러시아)으로 열강의 묵인을 확보합니다. 이어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를 배치하고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합니다.
을사늑약에 대한 저항 장지연 —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게재 민영환 — 시종무관장, 자결 순국 최익현 · 민종식 — 을사의병 봉기 고종 — 을사늑약 무효를 국제 사회에 호소 (→ 헤이그 특사)
을사늑약 · 외교권 박탈 · 통감부 · 시일야방성대곡 · 민영환
특사를 보내고 왕좌에서 쫓겨나다
1907년, 고종은 을사늑약 무효를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비밀 특사를 파견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 입장조차 거부당합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1907.6): 을사늑약 무효 호소
고종 강제 퇴위(1907.7): 특사 파견을 빌미로
정미7조약 체결(1907.7): 차관 정치 + 군대 해산
박승환 참령 자결: 군대 해산에 항의
헤이그 특사 · 고종 퇴위 · 정미7조약 · 군대 해산
외교권, 군대, 사법권 그리고 나라 전체
을사늑약(1905): 외교권 박탈
정미7조약(1907): 군대 해산
기유각서(1909): 사법권 이양
한일병합(1910): 주권 전체 피탈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합니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됩니다. 이 날이 경술국치입니다.
을사늑약(1905)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었다.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제가 취한 조치는?
주권 박탈의 올바른 순서는?
핵심 용어
체결일
1905년 11월 17일
강제 주체
이토 히로부미
핵심 내용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설치 기관
통감부 (서울)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무효 근거
황제 비준 없이 강제 체결
정사(수석)
이상설
부사
이준
서기관
이위종
공포일
1910년 8월 29일
한국 측 서명
이완용 (내각총리대신)
일본 측 서명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총독)
결과
대한제국 소멸, 조선총독부 설치
정리 노트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핵심 정리
을사늑약 (1905)
- 체결일
- 1905년 11월 17일 — 이토 히로부미 강제
- 핵심
-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 —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 무효 근거
- 황제 비준 없이 강제 체결
- 저항
- 장지연(시일야방성대곡) · 민영환(자결) · 을사의병
헤이그 특사 (1907)
- 3인 특사
- 이상설(수석) · 이준 · 이위종
- 결과
- 일본 방해로 회의장 입장 거부 → 이준 순국
- 일제 반응
-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 강제 퇴위 → 정미7조약
을사늑약 = 을사오적 도장 (황제는 비준 거부 → 무효) 헤이그 특사 → 고종 퇴위 → 정미7조약(군대 해산) 연쇄 흐름
핵심 정리
- 1주권 박탈 순서: 외군사주 — 외교권(05)→군대(07)→사법권(09)→주권(10)
- 2통감부(을사늑약, 1906) vs 조선총독부(한일병합, 1910)
- 3안중근 의거: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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