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5 고려시대 (후기)
공민왕의 반원 개혁
1356년, 고려가 다시 고려답게 되려 한 해
원나라가 홍건적의 난으로 흔들리자, 공민왕은 결단을 내린다. 기철 일파 숙청, 이문소 폐지, 쌍성총관부 탈환 — 한 해에 세 가지를 동시에 밀어붙였다.
80년 간섭을 끊어내려는 왕의 의지, 그러나 홍건적과 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철 숙청, 이문소 폐지, 쌍성총관부 탈환 — 이 세 가지가 모두 1356년이라는 사실, 반드시 기억하세요.
핵심 내용
1356년, 고려가 다시 고려답게 되려 한 해
공민왕(재위 1351~1374)이 반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은 원나라의 쇠퇴다. 1340년대부터 홍건적의 난 등 대규모 반란이 터지며 원의 통제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첫 번째 칼날은 기철 일파를 향했다. 기철은 원 순제의 황후 기황후의 오빠로, 고려에서 왕보다 더 큰 권세를 누렸다. 공민왕은 1356년 이들을 전격 숙청했다.
같은 해,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했다. 원의 내정 간섭 핵심 창구를 없앤 것이다. 그리고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탈환했다. 이때 핵심 협력자가 이자춘(이성계의 아버지)이다.
1356년의 3대 사건 1. 기철 일파 숙청 (친원 세력 제거) 2.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간섭 통로 차단) 3. 쌍성총관부 무력 탈환 (영토 회복, 이자춘 협력)
1356 · 기철 숙청 ·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탈환 · 이자춘
네 축으로 밀어붙이고, 몽골풍까지 금지하다
1. 친원파 제거: 기철 일파 숙청
2. 간섭 기구 철폐: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3. 영토 회복: 쌍성총관부 탈환
4. 문화 회복: 몽골풍 금지, 관제 복구 시도
관제 복구도 시도했으나 완전한 복구에는 이르지 못했다. 원의 반발과 국내 친원 세력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은 기황후를 앞세워 공민왕 폐위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반원 개혁의 의의: 약 80년간의 원 간섭을 끝내려 한 시도. 쌍성총관부 탈환(영토 회복)과 이문소 폐지(간섭 통로 차단)가 핵심 성과. 그러나 관제 복구 불완전, 홍건적·왜구 외환이 한계였다.
반원 개혁 4대 축 · 관제 복구 불완전 · 원 공민왕 폐위 시도 실패
개경이 함락되고, 화포가 불을 뿜다
반원 개혁 와중에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한다. 1차(1359년) 격퇴, 2차(1361년)에는 개경이 함락되어 공민왕이 안동까지 피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격퇴에 공을 세운 장군이 이성계다.
왜구도 극성을 부렸다. 일본 해적 세력이 해안가를 약탈하며 극심한 피해를 줬다.
최무선과 화약 • 원 상인 이원에게서 화약 제조 기술 습득 • 화통도감 설치 건의 → 화약·화포 제작 • 진포 해전(1380): 화포 최초 실전 사용, 왜구 함선 격파
홍건적 2차=개경 함락·안동 피난 · 최무선=진포=화통도감 · 이성계=황산
쌍성총관부 탈환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은 이성계이다
최무선이 화포를 최초로 실전 사용한 전투는?
연도를 헷갈리면 문제를 놓친다
1258 = 쌍성총관부 설치, 1356 = 쌍성총관부 탈환 이 두 연도를 바꿔서 출제하는 경우가 많다. 확실히 구분하자!
공민왕은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영토를 수복하였다.
공민왕은 기철 등 친원파 권문세족을 숙청하였다.
공민왕의 반원 개혁 정복!
핵심 용어
최무선
진포 해전(1380) — 화포 최초 실전
이성계
황산 대첩(1380)
최영
홍산 대첩(1376)
정지
관음포 대첩(1383)
1258
쌍성총관부 설치 (원이 점령)
1351
공민왕 즉위
1356
기철 숙청 +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탈환
1359
홍건적 1차 침입
1361
홍건적 2차 침입 (개경 함락)
1380
진포 해전(최무선) + 황산 대첩(이성계)
정리 노트
1356년 공민왕 반원 개혁 3대 사건
- 기철 일파 숙청
- 친원 세력 제거. 기철=원 황후 기황후의 오빠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원의 내정 간섭 통로 차단
- 쌍성총관부 무력 탈환
- 영토 회복. 협력자=이자춘 (이성계의 아버지!)
반원 개혁 4대 축
- 축 1~4
- 친원파 제거 → 간섭 기구 철폐 → 영토 회복 → 몽골풍 금지·관제 복구
쌍성총관부 설치=1258년, 탈환=1356년 — 연도 바꿔 출제 빈출! 이자춘=이성계의 아버지 (이성계가 직접 탈환한 것 아님)
홍건적·왜구 격퇴 인물과 전투
홍건적 침입
- 1차 (1359년)
- 격퇴 성공
- 2차 (1361년)
- 개경 함락 → 공민왕 안동 피난. 이성계가 격퇴에 공헌
왜구 격퇴 전투
- 최무선
- 진포 해전(1380) — 화포 최초 실전 사용. 화통도감 건의
- 이성계
- 황산 대첩(1380)
- 최영
- 홍산 대첩(1376)
진포=최무선(화포), 황산=이성계 — 인물·전투 바꿔 출제 빈출! 최무선 화약 기술 원천: 원 상인 이원에게서 습득
핵심 정리
- 11356년 = 기철 숙청 +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탈환(이자춘)
- 2반원 개혁 4대 축: 친원파 제거 · 간섭 기구 철폐 · 영토 회복 · 문화 회복
- 3최무선 = 화통도감 = 진포 해전(화포 최초 실전), 이성계 = 황산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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