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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통치와 경제 수탈 (1920년대)
기만적 유화 정책과 산미증식계획으로 포장된 2차 수탈.
#문화통치#산미증식#청산리#의열단
왜 배우는가
산미증식계획·회사령 폐지·치안유지법·민립대학·물산장려가 5종 세트.
3·1운동 이후 사이토 총독이 표방한 '문화정치'는 실상 분할통치·친일파 양성. 보통경찰제·언론 허용(검열)·참정권 제시(공염불).
| 정책 | 내용 | 실상 |
|---|---|---|
| 헌병경찰 → 보통경찰 | 경찰서·인원 오히려 증가 | 탄압 강화 |
| 조선일보·동아일보 허용 | 1920 창간 | 삭제·정간 빈번 |
| 회사령 폐지(허가→신고) | 1920 | 일본 자본 유입 |
| 치안유지법(1925) | 사회주의·독립운동 탄압 | — |
| {{sanmijeung|산미증식계획}}(1920~34) | 쌀 증산 명분 | 증산분 이상 일본 수탈, 조선 쌀 소비량 반감 |
| 관세 철폐(1923) | 일본 본토-조선 무관세 | 값싼 일본 상품 유입 |
1920년대 경제 운동 — ① 물산장려운동(1923, 조만식, 평양,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 ② 민립대학 설립 운동(1922, 이상재) — 총독부 경성제대(1924) 설립으로 무산 ③ 형평운동(1923, 백정 차별 철폐, 진주).
만주·간도 무장투쟁 — 봉오동전투(1920.6, 홍범도 대한독립군) → 청산리대첩(1920.10, 김좌진 북로군정서 + 홍범도 연합, 6일 10전 전승) → 일본 보복 경신참변(간도참변). 이후 자유시 참변(1921) 등으로 일시 침체.
의열단(1919, 만주, 김원봉) — 신채호 『조선혁명선언』(1923)을 강령으로. 김상옥·김익상·나석주 등의 의거. 1930년대 민족혁명당→조선의용대 로 확장.
개념 딥다이브
산미증식계획 심화
증산 < 반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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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월 김좌진·홍범도가 연합해 일본군을 6일간 10전 전승한 전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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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의 쌀 생산량은 늘었지만 조선인 1인당 쌀 소비량은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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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______ 을 중심으로 평양에서 시작된 ______ 운동은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를 구호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