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개항기와 대한제국
[시험특강] 임오군란 vs 갑신정변
1882 vs 1884 이 두 사건만 구분하면 합격이 보인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둘 다 1880년대, 둘 다 청군 개입으로 실패, 둘 다 일본과 조약 체결. 비슷해 보이지만 주도 세력과 결과 조약이 완전히 다릅니다.
구식 군인의 봉기인가, 급진 개화파의 정변인가?
주도 세력, 계기, 결과 조약 — 세 가지 축으로 두 사건을 칼같이 비교합니다.
핵심 내용
13개월 급료 체불 구식 군인이 일어서다
1881년 일본식 신식 군대 별기군이 창설되면서, 구식 군인들은 차별과 급료 체불에 시달립니다. 13개월간 급료를 못 받고, 그나마 지급된 급료에는 모래와 겨가 섞여 있었습니다. 1882년 6월, 구식 군인들이 폭발합니다.
구식 군인 봉기: 선혜청 습격, 민겸호 살해
도시 빈민 합류: 일본 공사관·별기군 습격
대원군 재집권: 별기군 해체, 개화 정책 후퇴
청군 개입: 대원군 톈진으로 납치, 민씨 복귀
근대 국가의 청사진 3일 만에 무너지다
임오군란 이후 청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급진 개화파(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가 정변을 일으킵니다. 청불전쟁으로 청군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1884년 12월 우정총국 축하연에서 거사합니다.
14개조 개혁 정강 핵심 1. 청에 대한 사대 관계 폐지 → 자주 독립 2. 문벌 폐지, 인민 평등권 → 신분 타파 3. 지조법 개혁 → 토지세 공정화 4. 재정 일원화(혜상공국 → 호조 관할) 하지만 청군 약 1500명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 — '3일 천하'
톈진조약의 '파병 시 사전 통보' 조항이 10년 뒤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청이 파병하자,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도 파병 → 청일전쟁 발발의 빌미가 됩니다.
공통점: 청군 개입으로 실패 차이점: 주도 세력과 결과 조약
암기법: '임구제, 갑급한톈' 임오군란 = 구식 군인 = 제물포조약 갑신정변 = 급진 개화파 = 한성조약 + 톈진조약
임오군란의 결과 한성조약이 체결되었다.
갑신정변을 주도한 세력은?
톈진조약은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되었다.
톈진조약의 '파병 시 사전 통보' 조항이 빌미가 된 사건은?
핵심 용어
제물포조약(조선-일본)
배상금 + 공사관 경비병 주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조선-청)
청 내정 간섭 강화 근거
한성조약(조선-일본)
배상금 + 사과 + 공사관 신축 비용
톈진조약(**청-일본**)
동시 철수 + 파병 시 사전 통보
주도 세력
임오: 구식 군인+도시 빈민 / 갑신: 급진 개화파
성격
임오: 반개화·반일 봉기 / 갑신: 근대화 지향 정변
계기
임오: 급료 체불+별기군 차별 / 갑신: 청 세력 축출+개혁
대원군
임오: 재집권 / 갑신: 무관
일본 조약
임오: 제물포조약 / 갑신: 한성조약
기타 조약
임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갑신: 톈진조약
이후 영향
임오: 청 내정 간섭 강화 / 갑신: 톈진→청일전쟁 빌미
정리 노트
임오군란 vs 갑신정변 핵심 비교
두 사건 비교 (암기: 임구제 / 갑급한톈)
- 주도 세력
- 임오 = 구식 군인+도시 빈민 / 갑신 = 급진 개화파
- 연도
- 임오 = 1882년 / 갑신 = 1884년
- 일본 결과 조약
- 임오 = 제물포조약 / 갑신 = 한성조약
- 기타 조약
- 임오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청) / 갑신 = 톈진조약(청↔일)
- 공통점
- 둘 다 청군 개입으로 실패, 둘 다 일본과 조약 체결
갑신정변 14개조 핵심
- 있는 것
- 청 사대 폐지, 문벌 폐지(인민 평등), 지조법 개혁
- 없는 것
- 토지 균분 없음 (동학 폐정개혁안에 있음)
톈진조약 당사국 = 청↔일본 (조선은 당사국 아님!) 톈진조약 '파병 시 통보' → 1894년 청일전쟁 발발의 빌미
핵심 정리
- 1공통점: 둘 다 청군 개입으로 실패, 둘 다 일본과 조약 체결
- 2차이점: 주도 세력(구식 군인 vs 급진 개화파), 결과 조약(제물포 vs 한성+톈진)
- 3갑신정변 인물: 김옥균·박영효·서광범·홍영식, 서재필(→독립신문·독립협회)
- 4톈진조약 당사국 = 청-일본 (조선은 당사국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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