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개항기와 대한제국
국채보상운동
담배 끊고 나라 빚 갚자!
1907년 대구, 상인 서상돈이 외칩니다. '2000만 국민이 3개월간 담배를 끊으면 1300만 원을 갚을 수 있습니다!' 칼 대신 동전 하나로 나라를 구하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경제적 저항은 일제의 방해를 이길 수 있었을까?
금연·금주, 비녀 헌납, 대한매일신보. 돈으로 나라를 지키려 한 경제적 구국 운동을 살펴봅시다.
핵심 내용
나라 예산에 맞먹는 빚 1300만 원의 무게
일본은 대한제국에 계속 차관(빌려주는 돈)을 밀어넣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근대화 지원'이었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예속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쌓인 국채는 1300만 원 — 당시 국가 예산(약 1500만 원)에 맞먹는 규모였습니다.
전 계층이 참여한 운동 상인·농민·관리·학생은 물론, 부녀자들이 비녀와 가락지를 헌납했고, 기생·백정 등 천민 계층까지 동참했습니다. 해외 동포(미주·일본·만주)도 모금에 참여한 민족적 연대 운동이었습니다.
1907년 · 대구 · 서상돈 · 1300만 원 · 금연·금주 · 부녀자 비녀 헌납
영국인 신문이 보호하고 일제가 무너뜨리다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베델(배설)이 발행인이었기에 일제의 신문지법 적용을 받지 않았습니다. 가장 자유롭게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한 핵심 매체였습니다.
운동 좌절의 결정타 일제는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 총무를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합니다. 모금한 돈이 빼돌려졌다는 누명이었습니다. 핵심 인물 구속 → 조직 와해 → 국민 신뢰 하락 → 운동 좌절 (양기탁은 나중에 무죄 판명)
국채보상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운동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좌절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건은?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도시는?
핵심 용어
시작
1907년 2월
발원지
대구
발의자
서상돈(대구 상인), 김광제
목표
국채 1300만 원 상환
방법
금연·금주를 통한 모금
시기
국채보상: 1907년 / 물산장려: 1920년대
배경
국채보상: 대한제국 시기 / 물산장려: 일제강점기
목적
국채보상: 국채 상환 / 물산장려: 국산품 애용
시작지
국채보상: 대구 / 물산장려: 평양
정리 노트
국채보상운동 핵심 정리
운동의 기본 정보
- 시기
- 1907년 2월 — 일제강점(1910) 이전
- 발원지
- 대구 — 서상돈·김광제 발의
- 목표
- 일본 차관 1300만 원 상환
- 방법
- 금연·금주 모금, 부녀자 비녀·가락지 헌납
언론 역할과 좌절
- 대한매일신보
- 영국인 베델 발행 → 일제 신문지법 적용 면제, 적극 지원
- 좌절 원인
- 양기탁 횡령 혐의 구속 → 조직 와해 (나중에 무죄)
- vs 물산장려운동
- 1907년 대구(국채보상) vs 1920년대 평양(물산장려)
대한매일신보(항일) ≠ 매일신보(친일 기관지) 구분 필수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국채보상운동 =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 아님!)
핵심 정리
- 1대한매일신보(항일) ≠ 매일신보(친일 기관지)
- 2좌절 원인: 일제의 양기탁 횡령 혐의 구속
- 3의의: 경제적 구국 운동의 선구 + 전 계층 참여 + 물산장려운동의 선례
- 4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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