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개항기와 대한제국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민중이 정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다
1896년,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합니다. 종로 네거리에 수천 명이 모여 나라의 미래를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중의 목소리는 왜 끝내 짓밟혔는가
독립신문의 깨우침, 독립문의 상징, 만민공동회의 함성.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아가 봅시다.
핵심 내용
갑신정변의 청년이 신문을 들고 돌아오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참여 후 미국으로 망명, 10년 넘게 서구 민주주의를 체험한 뒤 귀국합니다.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합니다.
함정 주의: 독립신문은 "최초의 민간 신문"이지 "최초의 근대 신문"이 아닙니다! 최초의 근대 신문은 한성순보(1883)입니다.
영은문을 허물고 독립문을 세우다
독립협회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웁니다(1897). 모화관도 독립관으로 개편합니다. 독립문은 중국(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합니다.
1896년 7월 독립협회가 설립됩니다. 3대 목표는 자주 국권(외세 의존 탈피), 자강 개혁(근대적 제도), 자유 민권(국민의 권리 보장)입니다.
함정 주의: 독립문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중국(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합니다. 영은문(중국 사신 영접문) 자리에 세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함정에 매년 많은 수험생이 걸립니다!
영은문 → 독립문 · 모화관 → 독립관 · 청으로부터의 독립
종로 네거리에 수만 명이 모이다
독립협회가 주도해서 연 대규모 민중 집회가 만민공동회입니다. 1898년 3월 제1차 만민공동회에서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규탄하여 철회시킨 것이 큰 성과였습니다.
함정 주의: "만민공동회에서 헌의6조를 채택했다" → 오답! 헌의6조는 관민공동회(관리+민중 합동 집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민중이 선출한 대표, 좌절된 의회의 꿈
1898년 10월, 관민공동회에서 헌의6조를 채택합니다. 핵심은 조약 체결 시 중추원 의장 합동 서명(2조)과 고위 관리 임명 시 정부 자문(5조) — 사실상 의회적 기능의 도입 시도였습니다.
고종은 중추원 관제를 개편하여 의관 50명 중 25명을 민선으로 뽑기로 합니다. 그러나 보수파가 "독립협회가 공화정을 세우려 한다"고 모함하고, 고종은 황국협회(보부상)을 동원하여 독립협회를 강제 해산(1898.12)시킵니다.
시험 포인트: 독립협회를 탄압한 세력 = 고종 + 보수파 + 황국협회(보부상). "보부상이 독립협회를 지지했다"는 선지가 나오면 오답! 서재필은 이미 1898년 5월 미국으로 추방당한 상태였습니다.
짓밟혔지만 사라지지 않은 민주주의의 씨앗
서재필 · 독립신문 1896 · 독립협회 · 만민공동회 · 관민공동회 · 헌의6조
인물 주의: 독립협회 회장은 1대 안경수 → 2대 윤치호. 서재필은 창설 주도자이지 회장은 아닙니다!
독립문이 상징하는 것은?
헌의6조는 만민공동회에서 채택되었다
핵심 용어
창간일
1896년 4월 7일
발행인
서재필
특징
순한글 + 영문판 (The Independent)
의의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협회
단체(조직) — 이권 수호, 계몽 활동
만민공동회
집회(민중만) — 러시아 이권 규탄 등
관민공동회
집회(관리+민중) — 헌의6조 채택
정리 노트
독립신문 · 독립협회 · 독립문 핵심 정리
독립신문 (1896)
- 창간일
- 1896년 4월 7일 — 서재필 발행
- 특징
- 순한글 + 영문판(The Independent)
- 주의
- 최초의 민간 신문 (최초 근대 신문 = 한성순보 1883)
독립협회와 독립문
- 독립협회 설립
- 1896년 7월 — 3대 목표: 자주 국권·자강 개혁·자유 민권
- 독립문
- 영은문(중국 사신 영접) 철거 → 독립문 건립
- 독립문 상징
- 중국(청)으로부터의 독립 — 일본이 아님!
- 모화관 → 독립관
- 개편
독립문 = 청으로부터의 독립 상징 (일본으로부터가 아님!) 매년 출제 독립협회 회장: 1대 안경수 → 2대 윤치호 (서재필은 창설 주도자)
만민공동회 · 관민공동회 · 헌의6조 정리
세 가지 구분
- 독립협회
- 단체(조직) — 이권 수호, 계몽, 토론회
- 만민공동회
- 집회(민중만) — 러시아 절영도 조차 요구 철회 등
- 관민공동회
- 집회(관리+민중) — 헌의6조 채택
헌의6조와 독립협회 해산
- 헌의6조 (1898)
- 관민공동회에서 채택 — 조약 체결 시 중추원 의장 합동 서명
- 의회 설립 시도
- 중추원 의관 50명 중 25명 민선 선출 합의
- 해산 (1898.12)
- 보수파 모함 + 황국협회(보부상) + 고종이 강제 해산
헌의6조 = 관민공동회 채택 (만민공동회 아님!) 매년 출제 독립협회 탄압: 황국협회(보부상)이 독립협회에 **반대**했음 러시아 절영도 조차 요구 = 만민공동회에서 규탄 → 철회
핵심 정리
- 1최초의 근대적 사회 정치 단체 — 민중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참여
- 2민중 계몽 — 독립신문, 토론회를 통해 근대적 시민 의식 보급
- 3이권 수호 — 러시아 절영도 조차 요구 철회 등
- 4의회 설립 시도 — 중추원 개편(의관 25명 민선)
- 5민주주의의 원형 — 만민공동회에서의 공개 토론, 다수결, 결의안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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