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개항기와 대한제국
흥선대원군의 대내 개혁
세도정치를 박살 내고 왕권을 되찾아라!
19세기 조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60년간 권력을 독점한 세도정치의 시대. 허수아비 왕들이 이어지던 그때, 궁도령이라 불리던 한 남자가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나라를 뒤흔듭니다.
양반 기득권에 정면 도전한 대원군, 그 개혁은 어디까지 가능했는가?
서원 600개를 47개로,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고, 비변사를 폐지하다. 조선 왕조 체제를 다시 세우려 한 강력한 개혁가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핵심 내용
60년의 세도정치, 허수아비 왕의 시대
19세기 조선은 세도정치의 시대였습니다. 왕의 외척 가문이 정치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 — 순조 때는 안동 김씨, 헌종 때는 풍양 조씨, 철종 때는 다시 안동 김씨가 권력을 쥐었습니다.
과거 시험은 돈 주고 합격하는 매관매직이 횡행했고,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1862년 임술농민봉기까지 터진 엉망진창 상태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입니다.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신정왕후 조씨가 이하응의 둘째 아들을 왕으로 지명합니다. 이것이 고종이며, 12세 어린 나이로 즉위하면서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시작합니다.
시험 포인트: 세도정치 시기 = 순조·헌종·철종 3대 약 60년간. 핵심 가문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 대원군은 '왕'이 아닙니다 — 왕의 아버지에게 주는 칭호 • 고종이 왕이고, 대원군은 왕의 아버지로서 섭정한 것
세도정치 · 안동 김씨 · 풍양 조씨 · 흥선대원군 · 고종 즉위
한 기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
대원군이 권력을 잡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재를 능력 위주로 등용한 것이었습니다. 당파와 신분에 관계없이 남인, 북인 계열은 물론 서얼 출신도 과감하게 기용했습니다.
이어서 비변사를 폐지합니다. 비변사는 원래 임시 기구였지만 조선 후기에는 사실상 국정 최고 의결 기관이 되어 세도가문이 모든 걸 좌지우지했습니다.
핵심: 비변사 폐지 → 의정부·삼군부 '부활'입니다.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유명무실했던 것을 되살린 것! '신설'이라고 하면 틀린 선지.
능력 본위 등용 · 서얼 허통 · 비변사 폐지 · 의정부 · 삼군부
600개를 47개로 줄이고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다
전국 600여 개 서원은 면세·면역 특권을 누리며 백성을 수탈하는 양반 세력의 거점이었습니다. 대원군은 만동묘를 가장 먼저 철폐하고, 47개 사액서원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철폐했습니다.
이어서 호포제를 실시합니다. 원래 양반은 군포가 면제였지만, 대원군은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했습니다. 부과 기준도 개인이 아닌 호(가구) 단위로 바꿨습니다.
삼정의 문란 중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사창제를 도입합니다. 마을(사) 단위로 곡식 창고를 설치하고 지역 주민이 자치적으로 운영하게 한 것입니다.
서원 철폐 주의사항 • 전부 철폐가 아니라 47개 사액서원 존치 — 숫자 47이 시험에 나옴 • 만동묘 철폐가 가장 먼저 이뤄진 상징적 사건 • 호포제는 신분제 폐지가 아님 — 양반 신분은 유지, 군포 부과만 확대
서원 47개 존치 · 만동묘 · 호포제 · 사창제 · 환곡
세비서호사대 여섯 글자로 기억하라
대원군은 법전 정비에도 힘썼습니다. 대전회통은 경국대전 이후의 법령을 통합 정리한 조선 왕조 마지막 기본 법전이며, 육전조례는 6조의 실무 규정을 정리한 행정 세칙입니다.
경국대전: 세조~성종
속대전: 영조
대전통편: 정조
대전회통: 흥선대원군
암기법: "세비서호사대" — 세도정치 타파, 비변사 폐지, 서원 철폐, 호포제, 사창제, 대전회통. 대원군 개혁은 왕권 강화 + 민생 안정 두 축으로 구분됩니다.
전통 질서 안에서의 개혁가, 근대적 개혁은 아니었다
대원군의 개혁은 세도정치 60년의 폐해를 청산하고 왕권을 회복한 긍정적 측면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재정 악화, 양반 세력의 반발 축적,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자주 출제되는 함정 5가지 • 서원 '전부' 철폐? → 아닙니다! 47개 사액서원 존치 • 호포제 = 신분제 폐지? → 아닙니다! 군포 부과 범위 확대일 뿐 • 비변사 폐지 → 의정부 '신설'? → 아닙니다! '부활'입니다 • 대전회통 = 최초의 법전? → 아닙니다! 최초는 경국대전, 대전회통은 마지막 • 대원군이 즉위? → 아닙니다! 고종이 왕, 대원군은 섭정
전통적 왕정 체제 복구 · 근대적 개혁은 개화파 영역
흥선대원군이 비변사를 폐지한 후 부활시킨 두 기관은?
흥선대원군은 호포제를 실시하여 양반 신분제를 폐지하였다
흥선대원군의 대내 개혁 완전 정복!
핵심 용어
의정부
행정 총괄 — 정치의 중심을 왕 중심으로 환원
삼군부
군사 총괄 — 군권을 분리하여 왕이 직접 장악
정리 노트
세도정치 타파와 왕권 강화 정리
세도정치 배경
- 세도정치 시기
- 순조·헌종·철종 약 60년 — 안동 김씨·풍양 조씨
- 대원군 등장
- 1863년 고종 12세 즉위 → 흥선대원군 섭정
- 주의
- 대원군은 왕이 아니라 왕의 아버지로서 섭정한 것
비변사 폐지와 왕권 강화
- 비변사 폐지
- 세도가문의 권력 기반 제거
- 의정부 부활
- 행정 총괄 (신설이 아닌 '부활')
- 삼군부 부활
- 군사 총괄 (신설이 아닌 '부활')
- 인재 등용
- 당파·신분 불문 — 서얼 허통 포함
비변사 폐지 → 의정부·삼군부 '부활' (신설이라고 하면 오답!) 세도정치 핵심 가문: 안동 김씨 + 풍양 조씨
흥선대원군 대내 개혁 5대 핵심
개혁 내용 (암기법: 세비서호사대)
- 세도정치 타파
- 능력 본위 인재 등용, 서얼 허통
- 비변사 폐지
- 의정부(행정) · 삼군부(군사) 부활
- 서원 철폐
- 47개 사액서원 존치, 만동묘 먼저 철폐
- 호포제
- 양반에게도 군포 부과 — 신분제 폐지는 아님
- 사창제
- 환곡 폐단 시정 — 마을 자치 운영
- 대전회통
- 조선 마지막 기본 법전 (최초는 경국대전)
서원 '전부' 철폐는 오답 → **47개 존치** 호포제 ≠ 신분제 폐지 (군포 범위만 확대) 대전회통 = 마지막 법전 (최초 법전은 경국대전)
핵심 정리
- 1세도정치 타파·능력 본위 인재 등용 (서얼 허통)
- 2비변사 폐지 → 의정부(행정)·삼군부(군사) 부활
- 3서원 철폐 (47개 존치, 만동묘 먼저 철폐)
- 4호포제 실시 (양반에게도 군포 부과)
- 5사창제 실시 (환곡 폐단 시정, 마을 자치 운영)
- 6법전 정비 (대전회통·육전조례)
- 7세도정치 타파 → 비변사 폐지 → 의정부·삼군부 부활 (왕권 강화)
- 8서원 철폐(47개 존치) + 호포제(양반에게 군포) + 사창제(환곡 시정)
- 9대전회통: 조선 마지막 기본 법전. 대원군은 전통적 왕정 체제 복구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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