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5 고려시대 (후기)
[시험특강] 원 간섭기 전후 완전 비교
고려가 원나라에 무릎 꿇고 공민왕이 일어서기까지
1270년 개경 환도 이후 약 90년,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 아래 놓였다. 왕의 호칭은 격하되고, 영토는 빼앗기고, 시호에 '충'자가 붙었다.
원나라가 약해진 틈, 공민왕은 무엇을 되찾았는가?
충○왕의 굴욕에서 공민왕의 반격까지 — 원 간섭기 전후를 완전 비교합니다.
핵심 내용
고려가 원나라에 무릎 꿇고 공민왕이 일어서기까지
원 간섭기(1270~1356)에 고려는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자주권을 크게 잃었다. 왕실 혼인, 관제 격하, 영토 직할, 정동행성 설치 등으로 실질적 통제를 받았다.
시호에 '충(忠)'이 붙으면 = 원 간섭기 왕.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등. 공민왕에는 '충'이 없다 → 반원 개혁 군주.
빼앗긴 땅, 변질된 기구
정동행성은 원래 일본 원정(1274, 1281)을 위해 설치한 군사 기구다. 일본 원정 실패 후에도 폐지하지 않고 고려 내정 간섭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도병마사는 원 간섭기에 도평의사사로 바뀌어 군사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기구로 비대해졌다.
쌍성총관부 = 함경도, 동녕부 = 평안도. 위치를 바꿔놓는 함정 주의! 정동행성은 '처음부터 내정 간섭용' → 틀림! 원래 일본 원정용.
원나라가 흔들릴 때 공민왕이 일어섰다
1356년, 공민왕은 원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대대적인 반원 개혁을 단행한다.
반원 외교: 원 연호 폐지, 명과 외교
정동행성 폐지: 내정 간섭 기구 제거
쌍성총관부 수복: 함경도 영토 회복(유인우)
관제 복구: 격하된 관청 이름 원상 복구
기철 숙청: 친원파 수장 제거
전민변정도감: 불법 토지 환수 + 양인 신분 회복
전민변정도감: 전(田)=토지, 민(民)=노비를 '바로잡는' 임시 기구. 그러나 권문세족의 반발로 완전 성공은 못했다. 근본적 토지 개혁은 과전법(1391)까지 기다려야 했다.
신진사대부는 과거 급제 지방 출신으로 성리학을 학문 기반으로 삼았다. 권문세족(불교·음서·토지 겸병)과 대립하며 조선 건국을 주도한다.
정동행성은 처음부터 고려 내정 간섭을 위해 설치되었다.
쌍성총관부는 공민왕이 설치한 기구이다.
만권당은 공민왕이 개경에 설치한 학문 기관이다.
원 간섭기에 도병마사는 도평의사사로 바뀌어 국정 전반을 관장했다.
공민왕의 반원 개혁 내용으로 옳지 않은 것은?
신진사대부는 불교를 학문적 기반으로 삼았다.
전민변정도감은 권문세족의 불법 토지를 완전히 환수하는 데 성공했다.
동녕부가 설치된 지역은?
핵심 용어
왕 호칭
폐하 → 전하
왕 시호
○종/○조 → 충○왕
중서문하성
→ 첨의부
추밀원
→ 밀직사
어사대
→ 감찰사
쌍성총관부
철령 이북(함경도) — 1258년 설치
동녕부
자비령 이북(평안도) — 서경 포함
탐라총관부
제주도 — 목마장(말 사육)
정동행성
존속 → 폐지
관제
격하 → 복구
지배층
권문세족 → 신진사대부 성장
토지
농장 확대 → 전민변정도감
외교
원 복속 → 반원·친명
안향
충렬왕 — 성리학 최초 소개
이제현
충선왕 — 만권당에서 활동
이색
공민왕 — 성균관 개편
정도전
급진파 → 조선 건국(역성혁명)
정몽주
온건파 → 고려 유지 주장
핵심 정리
- 1'충○왕' = 원 간섭기 왕 / 공민왕 = 반원 개혁
- 2정동행성 = 일본 원정용 → 내정 간섭 변질
- 3만권당 = 충선왕(공민왕 아님!)
- 4전민변정도감 = 토지 + 노비 바로잡기
- 5신진사대부 = 성리학 / 권문세족 =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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