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5 고려시대 (후기)
몽골 침입과 강화도 천도 — 40년 항전의 기록
바다를 건너지 못한 몽골 기마병
13세기, 유라시아를 정복한 몽골 기마군단이 고려에 손을 뻗쳤다. 1232년 최우는 몽골 기병이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강화도로 천도했다.
강화도의 지배층은 안전했지만, 육지의 백성들은 누가 지켜주었는가?
살리타의 침공, 강화도의 40년, 처인성의 승려 김윤후 — 몽골 앞에서 버텨낸 고려의 이야기입니다.
핵심 내용
몽골 기마대가 밀려오고 고려는 바다로 피하다
1231년, 몽골 장수 살리타가 이끄는 대군이 고려를 침공했다(1차 침입). 고려는 항복하고 몽골은 다루가치(감독관)를 설치했다.
이듬해 1232년, 실권자 최우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것이다. 몽골 기마군단은 바다를 건너지 못했고, 강화 해협의 빠른 물살이 천연 방어막이 되었다.
강화도 천도의 명과 암: 지배층은 강화도에서 궁궐을 짓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지만, 대다수 백성은 육지에 남겨져 몽골군의 약탈과 학살에 노출되었다.
1차 침입 1231(살리타) · 강화도 천도 1232(최우) · 기마군단=해전 약점
승려가 적장을 쏘고 노비가 성을 지키다
2차 침입(1232년), 경기도 용인의 작은 성 처인성에서 승려 김윤후가 이끄는 부곡민(하층민)들이 몽골 장수 살리타를 화살로 사살했다. 사령관을 잃은 몽골군은 크게 동요하며 후퇴했다.
3차 침입(1235~1239년)에는 충주성에서 노비·천민을 포함한 백성들이 주도적으로 항전했다. 강화도에 숨은 지배층 대신 백성들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처인성=김윤후(승려)=살리타 사살 · 충주성=노비·천민 항전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타고 초조대장경이 잿더미가 되다
3차 침입 시기에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진 황룡사 9층 목탑이 몽골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또한 현종 때 거란 침입을 계기로 만든 초조대장경도 이때 불탔다.
1258년 최의가 김준에 의해 살해되면서 최씨 정권이 무너졌고, 이후 1270년에 개경 환도가 이루어졌다. 약 40년간의 항전이 종료되고 원 간섭기가 시작되었다.
1232(천도) + 1270(환도) = 약 40년 항전 · 초조대장경=거란 때 제작, 몽골 때 소실
강화도 천도를 주도한 인물은 최충헌이다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한 인물은?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을 계기로 제작되었다
최우는 몽골 침입에 대응하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처인성 전투에서 김윤후가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핵심 용어
처인성
2차 침입(1232) / 김윤후(승려) / 살리타 사살 / 부곡민
충주성
3차 침입 시기 / 방호별감 / 노비·천민의 자발적 항전
정리 노트
몽골 침입과 항전 핵심 정리
주요 연표
- 1231년
- 몽골 1차 침입 (살리타 지휘, 다루가치 설치)
- 1232년
- 강화도 천도 (최우) + 처인성 전투 (김윤후·살리타 사살)
- 1235~1239년
- 3차 침입 — 충주성 전투(노비·천민 항전), 황룡사 9층 목탑 소실
- 1270년
- 개경 환도 → 원 간섭기 시작
대표 전투
- 처인성
- 승려 김윤후 + 부곡민 · 살리타(몽골 장수) 사살
- 충주성
- 노비·천민의 자발적 항전 (지배층은 강화도에 있었음)
강화도 천도=최우 (최충헌 아님!) 초조대장경=거란 때 제작, 몽골 때 소실 — 제작과 소실 계기 구분 필수
핵심 정리
- 11231: 몽골 1차 침입 (살리타, 다루가치 설치)
- 21232: 강화도 천도 (최우) + 처인성 전투 (김윤후)
- 31235~1239: 3차 침입, 충주성 전투, 황룡사 9층 목탑 소실
- 41258: 최씨 정권 붕괴 (최의 피살)
- 51270: 개경 환도 → 원 간섭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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