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4 고려시대 (전기)
거란 2차·3차 침입과 귀주대첩
칼로 끝낸 전쟁, 귀주의 물줄기
1010년 거란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으로 침공하여 개경이 함락됩니다. 하지만 진짜 결전은 1019년, 70세 노장 강감찬이 귀주 벌판에서 벌입니다.
외교로 막지 못한 전쟁을 칼로 끝낼 수 있을까?
강조정변, 현종 나주 피란, 귀주대첩, 천리장성 — 거란과의 전쟁을 완결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핵심 내용
신하가 왕을 갈아치우고, 그것이 전쟁의 빌미가 되다
1009년, 강조가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옹립합니다. 이것이 강조의 정변 — 거란은 이를 빌미로 1010년 거란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합니다.
강조는 항전하다 포로로 잡혀 처형됩니다. 거란군은 거침없이 남하하여 개경을 함락시키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란합니다. 현종이 친조(直接朝覲)를 약속한 뒤 거란이 철수하지만, 현종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2차 침입 = 강조의 정변(1009)이 빌미 거란 성종 친정 → 개경 함락 → 현종 나주 피란 → 친조 약속 후 철수 현종은 친조를 약속만 하고 가지 않았다 → 3차 침입의 원인
강조정변(1009) → 2차 침입(1010) → 개경 함락 · 현종 나주 피란
70세 노장이 10만 대군을 귀주 벌판에 묻다
1018년, 거란은 소배압에게 10만 정예를 주어 3차 침공합니다. 현종은 문신 출신 강감찬을 상원수로 임명합니다. 이때 강감찬은 이미 70세가 넘은 노장이었습니다.
흥화진 전투: 강감찬이 소가죽으로 물을 막았다가 터뜨려 거란군 타격 (수공)
소배압 남하: 개경 근처까지 진군했으나 공략 포기, 철수 결정
귀주대첩 (1019): 퇴각하는 거란군을 귀주에서 차단 → 10만 중 생환자 수천 명, 사실상 전멸
귀주대첩 = 1019년 + 강감찬 + 귀주 소배압의 10만 정예 사실상 전멸 귀주는 서희가 1차 침입 때 확보한 강동 6주 중 하나!
이겼으니 됐다가 아니라, 이겼지만 대비한다
귀주대첩 이후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침공하지 않습니다. 동아시아에 고려·거란(요)·송 3국 세력 균형이 형성됩니다.
천리장성은 귀주대첩(1019) 이후 축조! "거란 침입에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은 뒤 귀주대첩에서 승리" → 틀린 지문
거란 2차 침입(1010)의 빌미가 된 사건은?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격퇴한 인물은 강조이다.
강감찬은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쳤다(귀주대첩).
핵심 용어
축조 시기
1033~1044년 (약 12년)
구간
압록강 하구(서쪽) ~ 동해안 도련포(동쪽)
목적
거란과 여진의 침입 방어
정리 노트
거란 3차 침입과 귀주대첩
- 2차 침입 빌미
- 강조의 정변(1009) — 목종 폐위, 현종 옹립
- 2차 결과
- 개경 함락, 현종 나주 피란, 친조 약속 후 철수
- 3차 침입(1018)
- 소배압 10만 정예 + 강감찬 상원수 임명
- 귀주대첩(1019)
- 흥화진 수공 → 귀주 결전 → 거란군 사실상 전멸
강조 = 정변의 주모자, 강감찬 = 귀주대첩 승리자 — 혼동 주의! 2차 침입 빌미 '강조의 정변(1009)'이 핵심 — 다른 사건으로 바꿔 출제됨
핵심 정리
- 11차(993): 서희/소손녕 — 강동 6주 획득 (외교 승리)
- 22차(1010): 강조정변 빌미 — 개경 함락, 현종 나주 피란
- 33차(1018~1019): 강감찬/소배압 — 귀주대첩 (군사 대승)
- 4이후: 천리장성(1033~1044) 축조, 3국 세력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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