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 삼국시대
백제의 중흥과 멸망
무령왕에서 의자왕까지, 마지막 빛과 그림자
한성을 잃고 웅진으로 쫓겨온 백제가 무령왕의 중흥, 성왕의 개혁을 거쳐 다시 일어서지만, 관산성의 비극과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결국 멸망합니다.
한강 탈환의 꿈은 왜 좌절되었고, 계백의 결사대는 무엇을 지키려 했을까?
무령왕이 담(담로)을 쌓고, 성왕이 사비에 집을 짓고, 의자왕이 황산벌에서 무너졌습니다.
핵심 내용
웅진에서 다시 일어서다
475년 한성을 잃고 웅진(공주)으로 쫓겨온 백제. 무령왕(501~523)이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올라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를 강화합니다.
22담로(무령왕, 지방 통제) vs 22부(성왕, 중앙 관제). 숫자 22가 같아서 시험에 자주 섞어 출제합니다!
사비 천도, 남부여를 선언하다
성왕(523~554)은 538년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꿉니다. "우리는 부여의 정통을 잇는 나라"라는 국가 정체성 재정립이었습니다.
사비 천도(538) + 남부여 + 22부·5부·5방 = 성왕
한강의 꿈, 그리고 비극
551년 나제동맹으로 한강 유역을 수복하지만, 553년 신라 진흥왕이 한강 하류를 기습 탈취합니다. 배신에 분노한 성왕은 554년 관산성을 공격하다 전사합니다.
660년, 나당연합군(당 소정방 + 신라 김유신)이 백제를 공격합니다. 계백 장군의 5,000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신라군 5만에 맞서지만 결국 전사하고,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멸망합니다.
황산벌 전투의 상대는 신라군(김유신)입니다. 당나라군이 아닙니다! 당나라 소정방은 백강(금강) 쪽으로 진입했습니다.
두 번의 천도, 완전히 다른 성격
백제 멸망 = 660년 / 고구려 멸망 = 668년. 백제가 먼저!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을 통제한 왕은?
관산성 전투(554)에서 전사한 왕은 성왕이다.
백제 중흥과 멸망 완전 정복!
핵심 용어
22담로
지방 행정 단위에 왕족 파견 → 중앙집권 강화
양나라 교류
남조 양나라와 적극 교류. '영동대장군' 칭호 수여
무령왕릉
공주 송산리. 중국 남조식 벽돌무덤(전축분). 지석 발견으로 피장자 확인 — 극히 드문 사례
사비 천도(538)
계획적 중흥. 국호 남부여 개칭
행정 정비(22-5-5)
중앙 22부 + 수도 5부 + 지방 5방
일본에 불교 전파
552년(또는 538년설). 일본 불교의 시작
관산성(554)
성왕 전사, 나제동맹 완전 파탄
황산벌(660)
계백 5천 결사대 vs 김유신 5만. 백제 멸망
웅진(475, 문주왕)
패배 후 피난. 공주. 국호 변경 없음
사비(538, 성왕)
계획적 중흥. 부여. 국호 남부여 개칭
정리 노트
백제 중흥과 멸망
무령왕(501~523) — 중흥
- 22담로
- 지방 단위에 왕족 파견 → 지방 통제 강화
- 무령왕릉
- 공주 송산리. 벽돌무덤(전축분) 삼국 중 유일. 지석 발견으로 피장자 확인
- 양나라 교류
- 남조 양나라와 교류. '영동대장군' 칭호
성왕(523~554) — 개혁과 비극
- 사비 천도(538)
- 계획적 중흥. 국호 남부여 개칭
- 행정 정비
- 중앙 22부 + 수도 5부 + 지방 5방
- 관산성 전사(554)
- 한강 하류 탈취한 신라에 보복하다 전사 → 나제동맹 완전 파탄
핵심 전투
- 황산벌(660)
- 계백 5천 vs 김유신 5만 → 백제 멸망. 관창의 돌격이 전세 전환
22**담로**(무령왕·지방) vs 22**부**(성왕·중앙) — 숫자 22 같아 자주 혼동 출제! 웅진 천도(475, 문주왕) = 패배 피난 / 사비 천도(538, 성왕) = 계획적 중흥 무령왕릉 = 벽돌무덤. 굴식돌방무덤이라는 선지는 오답
핵심 정리
- 1무령왕 = 22담로(왕족 파견) + 무령왕릉(공주, 전축분, 지석)
- 2성왕 = 사비 천도(538) + 남부여 + 22부·5부·5방 + 일본 불교 전파
- 3관산성(554) = 성왕 전사 = 나제동맹 파탄
- 4황산벌(660) = 계백 결사대 vs 김유신 = 백제 멸망
퀴즈와 인터랙션으로 더 깊이 학습하세요
play_circle인터랙티브 레슨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