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1 특별편: 테마별 통사
대외관계사 통사
누가 쳐들어왔고, 누가 막았는가
살수대첩부터 강화도조약까지, 한반도에 전쟁이 없던 시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외관계사 문제의 핵심은 '전쟁-인물-상대국'을 정확히 매칭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 속에서 장군과 상대국, 대첩 이름을 어떻게 정확히 구분할 것인가?
삼국시대 살수대첩부터 근대 강화도조약까지, 대외관계사의 핵심을 한번에 정리합니다.
핵심 내용
살수대첩 — 을지문덕이 113만 수나라 대군을 물리치다
광개토대왕(391~413)은 만주 지역을 정복하고 영토를 최대로 확장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414년, 장수왕 건립)에 그 업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수대첩(612) — 을지문덕이 수나라 양제의 113만 대군을 살수(청천강)에서 대파했습니다. 30만 5천 명 중 살아 돌아간 병사가 2,700명. 수나라는 이 전쟁으로 멸망합니다.
안시성 전투(645) — 당 태종 15만 대군을 안시성 성주가 88일간 결사 항전하여 물리쳤습니다.
살수대첩 = 을지문덕 vs 수나라. 귀주대첩(강감찬 vs 거란)과 절대 헷갈리지 마세요!
서희의 외교 담판, 강감찬의 귀주대첩 그리고 40년 몽골 항쟁
거란 3차 침입
거란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했지만, 고려의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고려는 고구려 계승국"이라는 논리로 오히려 강동 6주를 획득하는 대반전을 이뤘습니다. 시험에서 1차 침입 = 서희(외교)로 출제됩니다.
1차(993) 서희의 외교 담판 → 강동 6주 획득
거란 성종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여 개경까지 함락시켰습니다. 이때 양규가 활약하며 거란군 후방을 교란했습니다. 1차와 달리 외교가 아닌 무력 침공이었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2차(1010) 거란 성종 직접 침입 → 개경 함락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했지만, 강감찬이 귀주(구주)에서 대파했습니다. 살아 돌아간 거란군이 불과 수천 명이었습니다. 시험에서 3차 침입 = 강감찬(귀주대첩)으로 가장 자주 출제됩니다.
3차(1018) 강감찬의 귀주대첩(1019) — 10만 대군 대파
윤관은 별무반을 조직하여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1107)을 쌓았습니다. 별무반 = 여진 정벌(공격) / 삼별초 = 몽골 항쟁(방어) —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몽골 침입(1231~1270) — 약 40년간 6차례 침입. 최우가 강화도로 천도하고,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사살했으며, 팔만대장경이 조판되었습니다.
삼별초: 강화도 → 진도 → 제주도 (이 순서 절대 바꾸면 안 됨!)
이순신의 바다, 권율의 행주산성 그리고 삼전도의 굴욕
임진왜란 핵심 인물
조선 수군의 영웅 이순신은 한산도대첩에서 학익진 전술로 왜군을 대파하고, 명량해전에서는 13척으로 133척을 격파하는 기적을 이뤘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했으며,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평가됩니다.
이순신 한산도대첩·명량해전·노량해전, 거북선
곽재우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붉은 옷을 입고 싸워 홍의장군이라 불렸으며, 경상도 의령에서 왜군의 진격을 막았습니다. 시험에서 "최초 의병장"이라는 키워드로 출제됩니다.
곽재우 최초 의병장 (홍의장군)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왜군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낸 장군입니다. 관군·승군·의병·부녀자까지 합심하여 승리했으며, 이것이 바로 행주대첩입니다. 행주대첩(권율·일본)은 살수대첩(을지문덕·수), 귀주대첩(강감찬·거란)과 자주 비교 출제됩니다.
권율 행주대첩(행주산성)
서산대사(휴정)는 임진왜란 때 전국의 승려를 모아 승군을 조직한 고승입니다. 제자 사명대사(유정)와 함께 왜군과 싸웠으며, 승군의 활약은 관군·의병과 함께 전쟁 반전의 핵심이었습니다.
서산대사 승군 조직
김시민은 진주성에서 왜군 3만 대군을 3,800명의 병력으로 막아낸 장군입니다. 이 진주대첩은 한산도대첩·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힙니다. 김시민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김시민 진주대첩(진주성)
정묘호란 vs 병자호란
정묘호란(1627): 후금이 조선을 침입하자,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했습니다.
조선과 후금이 형제 관계를 맺고 강화했습니다.
피난처 = 강화도가 시험 포인트입니다.
병자호란(1636):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군신 관계를 요구, 청 태종이 직접 침입했습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했지만 항복했습니다.
삼전도의 굴욕(삼배구고두례)을 당했습니다.
정묘호란(형제 관계) vs 병자호란(군신 관계·삼전도 굴욕) 구분!
병인양요(프랑스) / 신미양요(미국) 그리고 강화도조약(1876)
병인양요 vs 신미양요
병인양요(1866):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했습니다.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격퇴했습니다.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갔습니다.
신미양요(1871):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했습니다.
어재연이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전멸)했고, 미군은 철수했습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습니다.
강화도조약(1876) —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 치외법권, 해안 측량권, 무관세 등 일본에 유리한 내용이었습니다. "조선은 자주국" 조항은 청나라를 견제하려는 일본의 의도였습니다.
암기법: "병프신미" = 병인-프랑스, 신미-미국
고려 시대 귀주에서 거란 10만 대군을 대파한 장군은?
신미양요(1871)는 프랑스와의 전쟁이다.
삼별초의 이동 순서로 올바른 것은?
정리 노트
삼국~고려 대외 전쟁 핵심 정리
3대 대첩 — 장군·상대·시대 세트
- 살수대첩(612)
- 을지문덕 vs 수나라 — 고구려
- 귀주대첩(1019)
- 강감찬 vs 거란 — 고려
- 행주대첩
- 권율 vs 일본 — 조선
고려 거란 3차 침입
- 1차(993)
- 서희 외교 담판 → 강동 6주 획득
- 2차(1010)
- 거란 성종 직접 침입 → 개경 함락
- 3차(1018)
- 강감찬 귀주대첩(1019) — 10만 대군 격파
고려 군사 조직 구분
- 별무반(윤관)
- 여진 정벌(공격) — 동북 9성
- 삼별초
- 몽골 항쟁(방어) — 강화도→진도→제주도
살수=수나라 / 귀주=거란 — 절대 혼동 금지 삼별초 이동: 강화도→진도→제주도 순서 고정 서희(1차 외교) vs 강감찬(3차 군사) 구분 필수
핵심 정리
- 1살수대첩(을지문덕·수) / 귀주대첩(강감찬·거란) / 행주대첩(권율·일본)
- 2삼별초 이동: 강화도 → 진도 → 제주도
- 3병인양요(프랑스·1866) / 신미양요(미국·1871)
- 4정묘호란(형제) vs 병자호란(군신·삼전도 굴욕)
- 5강화도조약(1876) = 최초 근대 조약 + 불평등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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