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개항기와 대한제국
동학농민운동
사람이 곧 하늘이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1894년, 전라도 고부. 악덕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참다못한 농민들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들고 일어납니다. 죽창을 든 수만 명의 농민이 조선을 뒤흔들었습니다.
죽창으로 신식 소총을 이길 수 있었을까
고부 봉기에서 우금치까지. 반봉건과 반외세의 깃발 아래 펼쳐진 농민 혁명을 따라가 봅시다.
핵심 내용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동학은 최제우가 1860년에 창시한 종교이자 사상입니다. 핵심은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혁명적 메시지였습니다.
1894년 전라도 고부군, 악덕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쌓아 물세를 뜯어냈습니다. 참다못한 전봉준과 농민 1,000여 명이 고부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파괴합니다 — 고부 봉기의 시작입니다.
최제우 1860 · 인내천 · 조병갑 · 만석보 · 고부 봉기
시험 포인트: 고부 봉기의 직접적 원인은 조병갑의 만석보 수세(물세) 징수입니다. 고부 봉기 → 안핵사 이용태의 탄압 → 1차 봉기로 이어지는 흐름을 구분하세요.
황토현에서 전주성까지, 농민군의 연전연승
1894년 3월, 전봉준은 동학 조직을 본격 동원하여 무장 기포를 일으킵니다. 1차 봉기의 성격은 반봉건 — 탐관오리 타도가 핵심이었습니다.
무장 기포: 1894.3 — 1차 봉기 시작
황토현 전투: 농민군 대승, 사기 상승
전주성 점령: 1894.4 — 전라도 수도 장악
청·일 파병: 조정이 청에 파병 요청 →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도 파병
전주화약: 1894.5 — 농민군과 조정의 타협
시험 포인트: 전주화약은 농민군과 조정의 타협입니다. 외국 군대가 들어오자 전봉준이 내전을 중단하고, 대신 집강소 설치를 통해 농민 자치를 실현합니다.
농민이 다스리는 세상, 12조의 개혁 요구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가 설치됩니다. 동학 접주가 집강(지방관 역할)을 맡아 농민이 직접 행정을 운영한, 한국사 최초의 민중 자치 기구였습니다.
함정 주의: "토지 균분"은 폐정개혁안 12조(동학농민운동)에 있고, 갑신정변의 14개조에는 없습니다! 이 구분을 묻는 문제가 자주 나옵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다시 들고 일어서다
1894년 6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무력 점령합니다. 전봉준은 분노했습니다. 이것이 2차 봉기의 직접적 계기입니다. 이번에는 남접(전봉준)과 북접(최시형)이 논산에서 합류하여 약 10만 대군을 형성합니다.
1894년 11월,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관군 연합군과 격돌합니다. 농민군은 40~50차례 돌격했지만, 죽창으로 신식 소총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처절한 패배 끝에 전봉준은 순창에서 체포되어 1895년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시험 포인트: 1차 봉기 = 반봉건(탐관오리 타도), 2차 봉기 = 반외세(항일). 집강소는 전주화약 이후, 2차 봉기 이전에 설치됩니다.
경복궁 점령 → 2차 봉기 · 논산 집결 · 우금치 전투 · 순창 체포
실패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정신
핵심 흐름: 고부 봉기 → 무장 기포 → 황토현 → 전주성 → 전주화약 → 집강소 → 경복궁 점령 → 2차 봉기(논산) → 우금치 패배
동학농민운동에서 집강소가 설치된 시기는?
동학농민운동의 2차 봉기는 반봉건적 성격이 주된 특징이다
핵심 용어
노비 문서 소각
신분 해방
과부 재가 허용
여성권 신장
토지 균분
토지 개혁
탐관오리 처벌
반부패
왜와 내통하는 자 처벌
반외세
정리 노트
동학농민운동 배경과 1차 봉기 정리
배경과 고부 봉기
- 동학 창시
- 최제우 1860년 — 핵심 사상: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
- 고부 봉기 원인
- 군수 조병갑 — 만석보 수세 징수
- 주의
- 고부 봉기 ≠ 1차 봉기 — 안핵사 이용태 탄압 후 확대
1차 봉기와 전주화약
- 성격
- 반봉건 — 탐관오리 타도
- 주요 전투
- 황토현 전투 → 전주성 점령
- 전주화약
- 농민군과 조정의 타협 → 집강소 설치 기반
- 외세 개입
- 조정의 청 파병 요청 →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도 파병
1차 봉기 = 반봉건(탐관오리 타도) / 2차 봉기 = 반외세(항일) 전주화약 **이후**에 집강소 설치 (고부 봉기 직후 아님)
집강소 · 폐정개혁안 12조 · 2차 봉기 정리
집강소와 폐정개혁안
- 집강소
-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53개 군현 — 한국사 최초 민중 자치 기구
- 폐정개혁안 핵심
- 노비 문서 소각 · 과부 재가 · 토지 균분 · 탐관오리 처벌
- 주의
- 토지 균분 = 폐정개혁안(동학), 갑신정변 14개조에는 없음
2차 봉기와 우금치 전투
- 계기
- 일본군의 경복궁 무력 점령
- 성격
- 반외세 (항일)
- 합류
- 남접(전봉준) + 북접(최시형) — 논산 집결
- 우금치 전투
- 공주 우금치 — 일본군+관군에 패배 → 전봉준 순창 체포
핵심 흐름: 고부 봉기 → 무장 기포 → 황토현 → 전주성 → 전주화약 → 집강소 → 경복궁 점령 → 논산 집결 → 우금치 패배
핵심 정리
- 1최대 규모의 반봉건·반외세 농민 운동 — 수만~수십만 명 참여
- 2아래로부터의 개혁 시도 — 갑신정변(위로부터)과 대비
- 3집강소 — 한국사 최초의 민중 자치 기구
- 4갑오개혁에 영향 — 신분제 폐지 등 폐정개혁안 반영
- 5항일 의병 운동의 선구 — 반외세 정신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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