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개항기와 대한제국

임오군란

별기군과 구식 군인의 차별 구조를 이해하고 임오군란의 원인을 설명한다임오군란의 전개 과정과 흥선대원군 재집권·청군 개입을 파악한다제물포조약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내용을 비교한다

13개월 월급 안 주면 이렇게 됩니다

1882년, 13개월간 급료를 못 받은 구식 군인들에게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이 지급됩니다. 분노한 병사들이 칼을 들고 일어났고, 한양은 불길에 휩싸입니다.

군인의 봉기가 청·일 양국 군대를 불러들인 비극적 결과

구식 군인의 칼이 조선을 열강의 각축장으로 만들다 — 제물포조약에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 임오군란의 파장을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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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신식 군대는 우대, 구식 군인은 13개월 체불

개항 이후 조선은 1881년 별기군이라는 신식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가 훈련시키는 이 부대는 최신 무기에 대우도 좋았습니다.

반면 기존의 구식 군인들은 구식 무기에 급료까지 13개월 체불. 민씨 척족 세력이 재정을 장악하면서 구식 군인들의 급료를 계속 미뤘습니다.

1882년 6월, 드디어 13개월 만에 급료가 나왔는데 한 달치뿐이었고, 열어보니 겨와 모래가 섞여 있었습니다. 항의하자 주모자를 체포하려 하면서 — 분노가 폭발합니다.

임오군란 도화선: 13개월 급료 체불(원인) → 겨·모래 섞인 쌀(직접적 도화선). 체불 원인은 민씨 척족 세력의 재정 운용 문제이지 '일본의 압력'이 아닙니다!

별기군 1881 · 호리모토 · 13개월 체불 · 겨와 모래 · 민씨 척족

한양이 불탔다, 그리고 대원군이 돌아왔다

구식 군인들에 도시 하층민까지 합류하여 봉기가 확대됩니다. '민씨 정권 타도!', '일본 세력 축출!'을 외치며 선혜청, 민겸호의 집, 별기군 훈련장, 일본 공사관을 차례로 습격합니다.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는 살해되고, 일본 공사 하나부사는 인천으로 도주. 민비(명성황후)가 궁을 탈출하자, 혼란을 틈타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합니다.

대원군은 별기군을 해체하고 5군영을 복구하며 통리기무아문을 폐지 — 사실상 개화 정책을 되돌리는 반개화·보수 회귀 조치를 취합니다.

핵심 인물 결말 정리 • 민겸호 — 살해됨 (민씨 척족 핵심) • 호리모토 — 살해됨 (일본인 교관) • 하나부사 — 탈출 (일본 공사) • 대원군 — 재집권 후 톈진 압송

반개화·반외세 · 별기군 해체 · 5군영 복구 · 대원군 재집권

민비가 청을 부르고 대원군이 톈진으로 끌려가다

충주로 피신한 민비는 청나라에 군대 파견을 요청합니다. 마건충·오장경이 이끄는 약 3,000명의 청군이 한양에 진입하여 봉기를 진압하고, 흥선대원군을 체포해 톈진으로 압송합니다(3년간 억류).

일본은 공사관 습격과 교관 살해를 빌미로 제물포조약(1882년 8월)을 체결합니다. 배상금 50만 원과 함께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 주둔이 허용됩니다 — 일본 군대가 합법적으로 조선에 주둔하는 근거가 생긴 것입니다.

청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1882)을 맺어 청 상인에게 내지 통상권을 주고, 서문에 '조선은 청의 속방(속국)'이라고 명시합니다. 청의 내정 간섭이 본격화됩니다.

시험 포인트: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는 청군과 일본군이 동시에 주둔하게 됩니다. 이 구도가 이후 갑신정변·청일전쟁의 배경!

제임스, 한갑옷, 텐갑 세 조약을 구분하라

암기법: "제임스" = 제물포조약·임오군란 / "한갑옷" = 한성조약·갑신정변 / "텐갑" = 톈진조약·갑신정변(청↔일). 톈진조약의 '파병 시 상호 통보'가 훗날 청일전쟁의 빌미!

임오군란의 결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은?

임오군란은 급진 개화파가 주도한 근대화 운동이었다

임오군란 완전 정복!

key

핵심 용어

제물포조약

조선↔일본 — 배상금 + 공사관 경비병 주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조선↔청 — 내지 통상권 + 속방 규정

제물포조약(1882)

임오군란 → 조선↔일본 (배상금+경비병)

한성조약(1885)

갑신정변 → 조선↔일본 (배상금+신축비)

톈진조약(1885)

갑신정변 → 청↔일본 (양국 철군+파병시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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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노트

임오군란 배경과 봉기 전개 정리

임오군란의 원인

별기군 창설 (1881)
일본 교관 훈련, 신식 무기 — 구식 군인 차별
13개월 급료 체불
민씨 척족 세력 재정 장악이 원인
직접 도화선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 혼입

봉기의 전개

봉기 대상
선혜청·민겸호·별기군 훈련장·일본 공사관 습격
대원군 재집권
별기군 해체, 5군영 복구, 통리기무아문 폐지
성격
반개화·반외세 — 급진 개화파 주도가 아님

임오군란 = 구식 군인 + 도시 하층민 봉기 (급진 개화파 주도는 갑신정변) 체불 원인 = 민씨 척족 재정 운용 문제 (일본의 압력 아님)

임오군란 결과·조약 비교 정리

청군 개입 결과

대원군
청군에 의해 체포 → 톈진 압송 (3년 억류)
민비(명성황후)
충주 피신 → 귀환 후 친청 정책 복귀

사후 조약 비교 (암기: 제임스 / 한갑옷 / 텐갑)

제물포조약 (1882)
임오군란 → 조선↔일본 — 배상금 + 공사관 경비병 주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1882)
임오군란 → 조선↔청 — 내지 통상권 + '속방' 규정
한성조약 (1885)
갑신정변 → 조선↔일본 — 배상금+사과
톈진조약 (1885)
갑신정변 → 청↔일본 — 동시 철수 + 파병 시 통보

임오군란 이후 청군·일본군 동시 주둔 → 갑신정변·청일전쟁의 배경 제물포=임오군란/한성=갑신정변/톈진=갑신정변(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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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1최초의 반(反)개화 군사 운동 — 개화 정책에 대한 첫 무력 저항
  • 2청의 내정 간섭 시작 — 이후 10여 년간 청이 조선을 사실상 지배
  • 3일본의 군사적 진출 근거 마련 — 제물포조약으로 공사관 경비병 주둔
  • 4조선이 열강 각축장으로 전락 — 갑신정변의 배경
  • 5임오군란(1882): 구식 군인 봉기, 13개월 체불 + 겨·모래 쌀
  • 6대원군 재집권 → 청군 개입 → 대원군 톈진 압송
  • 7제물포조약(일본 경비병 주둔)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청 내정 간섭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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