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3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경제와 사회
민정문서와 장보고 통일신라의 살림살이
신문왕이 나라의 뼈대를 세운 뒤, 통일신라의 경제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1300년 전 마을 조사 보고서와 바다의 제왕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
넓어진 영토에서 세금을 어떻게 걷고, 국제 무역은 누가 장악하는가?
정전·민정문서·장보고 — 통일신라 경제의 세 기둥을 세워봅니다.
핵심 내용
성덕왕(722)이 백성에게 정전(丁田)을 지급합니다. 장정에게 농사지을 땅을 나눠줘 안정적 조세 수취의 기반을 만든 제도입니다.
정전 = 722년 = 성덕왕 (신문왕 아님!). 녹읍 폐지 = 신문왕(689), 정전 = 성덕왕(722) — 혼동 금지!
발견처: 일본 도다이지(東大寺) 정창원
조사 지역: 서원경(청주) 인근 4개 촌락
작성 주기: 3년마다
조사 주체: 촌주(마을 우두머리)
인구: 남녀별·연령별 인구수 (6등급)
소와 말: 가축 수 (3년간 증감 기록)
토지: 논밭 면적, 종류별 구분
나무: 뽕나무·잣나무 등 수목 수
미천한 출신의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신라인 노예가 팔리는 참상을 목격하고 귀국합니다. 828년, 흥덕왕의 허락을 받아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합니다.
당(唐): 비단·도자기·서적
청해진: 삼각 무역의 허브 (완도)
일본: 은·수공예품
장보고 = 당·신라·일본 3국 해상무역 장악. 당나라에 신라방·신라원·신라소 설치. 846년 자객 염장에 의해 암살 — 골품의 벽을 넘지 못한 비극.
민정문서는 매년 작성되었다.
정전을 지급한 왕은?
청해진이 설치된 곳은?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장악하였다.
정리 노트
통일신라 경제 핵심 정리
정전과 민정문서
- 정전 지급
- 성덕왕(722) — 장정에게 농지 분급 → 안정적 조세 수취
- 민정문서 발견
- 일본 도다이지 정창원 보관
- 민정문서 조사 지역
- 서원경(청주) 인근 4개 촌락
- 작성 주기·주체
- 3년마다 촌주(마을 우두머리) 작성
- 조사 4항목
- 인구·소말·토지·나무 (뽕나무·잣나무 등)
장보고와 청해진
- 설치
- 828년, 흥덕왕 허락 → 완도에 청해진 설치
- 역할
- 당·신라·일본 삼각 무역 허브 / 신라인 노예 무역 차단
- 당나라 거점
- 신라방·신라원·신라소 설치
- 최후
- 846년 자객 염장에게 암살
정전 = 성덕왕(722) / 녹읍 폐지 = 신문왕(689) — 절대 혼동 금지! 민정문서 발견처: 일본 정창원 청해진 = 828년 = 완도 = 장보고 = 흥덕왕
핵심 정리
- 1정전 = 722년 = 성덕왕 (신문왕 아님!)
- 2민정문서: 서원경(청주), 인구·소말·토지·나무, 3년마다, 촌주 조사
- 3민정문서 보관처: 일본 도다이지 정창원
- 4청해진: 828년, 완도, 장보고, 흥덕왕
- 5장보고: 당·신라·일본 삼각 무역, 846년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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