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3 경제사

역사적 금융위기

1929 대공황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이해한다1997 IMF 외환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극복 과정을 파악한다2008 글로벌 금융위기의 서브프라임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은 맞춘다 — 마크 트웨인

2008년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전 세계 주식시장이 반 토막 났습니다. 그런데 이 위기는 80년 전 대공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금융위기는 왜 반복되고,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세 번의 위기가 남긴 교훈을 알면 다음 위기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패턴을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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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1929년, 주가 89% 폭락

🇰🇷

IMF 외환위기

1997년, 한국 경제 충격

🏦

리먼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article

핵심 내용

주가는 영원히 오를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승전 후 미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올라섰고, 자동차·라디오·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며 소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포드의 모델T 자동차는 미국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고, 할부 금융이 등장하며 '지금 사고 나중에 갚는' 소비 문화가 퍼졌습니다.

문제는 이 낙관이 주식시장으로 번졌다는 것입니다. 구두닦이 소년도, 택시 기사도, 가정주부도 주식을 샀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신용 매수(마진 거래)였습니다.

당시에는 10%의 증거금만 내면 나머지 90%를 빌려 주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즉, 100달러로 1,000달러어치 주식을 사는 10배 레버리지였죠. 다우지수는 1921년 63에서 1929년 381까지 6배 올랐습니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 갑자기 대량 매도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10배 레버리지로 산 투자자들은 주가가 10%만 떨어져도 원금이 전액 소멸하는 구조였기에, 마진콜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주식을 팔면 가격이 더 떨어지고, 더 떨어지면 또 마진콜이 나오는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10월 29일 '검은 화요일'에는 하루 만에 1,600만 주가 거래되며 시장이 붕괴했습니다.

대공황 핵심 수치 • 다우지수: 381(1929.9) → 41(1932.7) = −89% 폭락 • 미국 실업률: 3% → 25% (4명 중 1명 실업) • GDP: −30% 감소 (1929~1933)

• 은행 파산: 약 9,000개 (전체의 40%) • 고점 회복까지: 25년 (1954년에야 1929년 고점 회복)

대공황은 단순한 주가 폭락이 아니었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예금이 증발했고, 공장이 멈추면서 실업자가 넘쳤습니다. '빵을 구하려 줄 서는 사람들'의 사진은 대공황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위기가 현대 금융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대공황의 참상을 경험한 미국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여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은행 개혁과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제도들은 오늘날까지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토대가 됩니다.

대공황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제도적 안전장치입니다. 최악의 참상을 겪은 미국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금융 시스템의 근본 구조를 바꿨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제도들은 오늘날 전 세계 금융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FDIC (예금보험공사) — 은행이 망해도 예금자의 돈을 보장.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 방지. 한국의 예금보험공사(5천만원 보장)도 같은 원리

대공황 때 약 9,000개 은행이 파산하면서 예금자들의 돈이 증발했습니다. FDIC는 이런 공포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은행이 망해도 정부가 예금을 보장해주니,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한꺼번에 돈을 인출하는 뱅크런이 사라졌습니다.

SEC (증권거래위원회) — 주식시장의 사기·조작을 감시. 공시 의무, 내부자 거래 금지 등 투자자 보호 규정 신설

대공황 이전에는 기업이 허위 정보를 퍼뜨려 주가를 조작하는 일이 횡행했습니다. SEC의 등장으로 기업은 재무정보를 의무 공시해야 했고, 내부자 거래가 범죄로 규정되면서 일반 투자자도 공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래스-스티걸법 — 상업은행(예금·대출)과 투자은행(증권)을 분리. 예금으로 투기하는 것을 금지. 1999년 폐지 후 2008년 위기 원인이 됨

대공황 때 은행들은 고객의 예금으로 주식 투기를 했고, 주가가 폭락하자 은행까지 무너졌습니다. 글래스-스티걸법은 예금을 받는 은행과 증권을 다루는 투자은행을 완전히 분리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법이 1999년 폐지된 후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됩니다.

마진 규제 — 10배 레버리지를 금지하고, 최대 2배로 제한(50% 증거금 의무). 현재까지 유지

대공황의 직접적 방아쇠였던 10배 마진 거래를 금지하고, 최대 2배 레버리지로 제한했습니다. 주식을 살 때 최소 50%는 자기 돈을 내야 하는 이 규정은 90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공황의 아이러니: 최악의 위기가 현대 금융의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대공황의 투자 교훈 • 레버리지는 상승장에서는 마법, 하락장에서는 재앙 • '구두닦이 소년도 주식을 사기 시작하면 팔아라' — 조지프 케네디

• 25년 만에 고점 회복 — 개별 주식은 영원히 회복하지 못한 것도 많음 • 분산 투자했다면? 채권·금 포함 포트폴리오는 5~7년 내 회복

1929년에 다우지수에 1,000달러를 넣고 25년을 기다린 사람은 원금을 겨우 회복했지만, 매달 10달러씩 적립식으로 투자한 사람은 바닥에서 더 많은 주식을 사서 수배의 수익을 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나라를 지킨 국민들

1990년대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어가며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위험한 구조가 숨어 있었습니다.

대기업들은 '선성장 후수습' 전략으로 빚을 내어 사업을 확장했고, 은행들은 정부의 암묵적 보증을 믿고 무분별하게 대출했습니다.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단기 외화 부채였습니다.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달러 빚이 전체 외채의 58%를 차지했는데, 정작 갚을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고작 39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가 시작됐습니다. 국제 투자자들은 '아시아는 다 같다'며 한국에서도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러가 빠져나가자 원화 가치가 급락했고, 달러로 빚을 진 기업들은 갚아야 할 원화 금액이 2배로 뛰었습니다. 1997년 11월, 외환보유액이 바닥났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 TV에서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국가부도 위기'를 발표하던 그 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IMF 위기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오랜 기간 쌓인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것입니다. 1990년대 한국 재벌들은 부채비율 400~500%라는 위험한 수준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 외채를 빌려 장기 투자에 쓰는 '만기 불일치'가 치명적이었습니다.

① 과잉 차입 (1990년대) — 재벌 부채비율 400~500%. 단기 외채를 빌려 장기 투자에 사용 (만기 불일치)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가 시작됐습니다. 국제 투자자들은 아시아 신흥국을 하나로 묶어 봤기 때문에, 태국 문제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에까지 전염됐습니다.

② 아시아 위기 전염 (1997.7) — 태국 바트화 폭락 →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로 확산 → 한국에 전염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만기가 도래한 단기 외채를 갚을 달러가 급속히 고갈됐습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고작 39억 달러로, 갚아야 할 단기 외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③ 외환보유액 고갈 (1997.11) — 외국인 자금 이탈 + 단기외채 만기 도래 → 갚을 달러가 없음 (39억 달러)

더 이상 자력으로 외채를 갚을 수 없게 되자, 대한민국 정부는 IMF에 210억 달러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총 패키지 580억 달러). 그 대가로 고강도 구조조정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국민들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④ IMF 구제금융 (1997.12.3) — IMF에 210억 달러 긴급 지원 요청(총 580억 달러 패키지) → 구조조정 조건 수용 → 국가 자존심 상처

구조조정의 고통은 극심했습니다. 금리가 30%까지 치솟으면서 기업과 가계가 무너졌고, 실업률은 7%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결집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2001년 IMF 차입금을 조기 상환하며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⑤ 고통스러운 회복 (1998~2001) — 대규모 구조조정, 금리 30%, 실업률 7% → 금 모으기 운동 → 2001년 IMF 조기 상환

IMF 위기의 참상 • 코스피: 700 → 277 (−60%) • 원/달러 환율: 800원 → 1,960원 (2.5배 폭등) • 기업 부도: 대우그룹(재계 2위, 부채 80조원) 등 30대 재벌 중 절반 해체

• 실업자: 178만 명 (실업률 7%) — 명예퇴직, 노숙자 급증 • 자살률: 1997년 인구 10만 명당 13명 → 1998년 18명 (38% 급증)

그러나 국민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에 350만 명이 참여하여 결혼반지, 돌반지, 금메달까지 모아 227톤(약 35억 달러)의 금을 수집했습니다.

전 세계가 놀란 이 운동은 한국 국민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월가의 천재들이 만든 금융 상품이 세계 경제를 무너뜨렸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닷컴 버블 붕괴 후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1%까지 내렸습니다.

돈이 넘쳐나자 은행들은 대출처를 찾아 나섰고, 그 결과 나온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였습니다.

소득 증빙도, 직업도, 자산도 없는 사람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NINJA론(No Income, No Job, No Assets)'이라 불렀습니다.

은행들이 이렇게 위험한 대출을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출을 하자마자 즉시 다른 곳에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천 건의 모기지를 한데 묶어 MBS(모기지담보증권)라는 금융상품으로 만들고, 이것을 다시 쪼개고 섞어 CDO(부채담보부증권)로 변환했습니다.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들이 마법처럼 AAA 등급(최고 안전)을 받았죠. 신용평가사들은 수수료에 눈이 멀어 높은 등급을 남발했습니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 CDO를 30~40배 레버리지로 매수했습니다. 자기 돈 1달러에 빌린 돈 30달러를 합쳐 투자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가정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2006년, 미국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마치 도미노처럼 5단계를 거쳐 전개됐습니다. 시작은 은행들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남발한 것이었습니다. 소득도, 직업도, 자산도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는 이른바 'NINJA론'이 횡행했습니다.

① 서브프라임 대출 남발 — NINJA론(소득·직업·자산 무확인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로 초기 이자만 낮게

이렇게 위험한 대출이 가능했던 이유는 증권화라는 마법 때문이었습니다. 은행들은 부실 대출 수천 건을 한데 묶어 MBS·CDO라는 복잡한 금융상품으로 변환한 뒤, 신용평가사로부터 AAA(최고 안전) 등급을 받아 전 세계 투자자에게 팔았습니다.

② 증권화 → 위험 은폐 — 부실 대출 수천 건을 MBS·CDO로 묶어 전 세계에 판매. AAA 등급 획득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 CDO가 안전하다고 믿고 극단적인 레버리지로 매수했습니다. 리먼브라더스는 자기 자본의 30배, 베어스턴스는 33배의 빚을 내어 투자했습니다. 자기 돈 1달러에 빌린 돈 30달러를 합친 것입니다.

③ 레버리지 폭발 — 리먼브라더스 30배, 베어스턴스 33배 레버리지로 CDO 매수

2006년부터 미국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변동금리가 올라 대출자들이 이자를 못 내기 시작했고, 대출 연체가 급증하면서 MBS의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30배 레버리지로 산 투자은행들에게는 치명적이었습니다.

④ 집값 하락 → 연쇄 부도 — 2006년부터 집값 하락 → 변동금리 인상 → 대출 연체 급증 → MBS 가치 폭락

결국 2008년 9월 15일, 158년 역사의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습니다. 자산 6,390억 달러 규모의 기관이 사라지자 글로벌 신용경색이 발생하고, 전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했습니다.

⑤ 리먼브라더스 파산 — 2008.9.15 리먼 파산(158년 역사, 자산 6,390억 달러) → 글로벌 신용경색 → 세계 동반 폭락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이 하룻밤에 사라졌습니다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새벽,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자산 6,390억 달러의 미국 4위 투자은행이 사라지는 순간, 전 세계 금융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은행들은 서로를 믿지 못해 돈을 빌려주지 않았고, 기업들은 운영자금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글로벌 무역이 멈추고, 수출 대국인 한국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긴급 구제에 나섰습니다.

TARP(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로 7,000억 달러를 투입했고, 연준은 금리를 0%로 낮추며 양적완화(QE)를 시작했습니다.

중앙은행이 직접 국채와 MBS를 매입하여 시장에 돈을 푼 것입니다. 유럽, 일본, 중국도 각국 사정에 맞는 구제 패키지를 내놓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국제 공조가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2008 위기 핵심 수치 • S&P 500: 1,565(2007.10) → 735(2009.3) = −53% • 전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 30조 달러 증발

• 미국 주택 가격: −33% 하락, 900만 가구 집 잃음 • 미국 실업률: 4.7% → 10% (1,500만 명 실업) • 한국 코스피: 2,064 → 938 (−54%)

• 원/달러: 900원 → 1,570원 (한미 통화스왑 300억 달러로 안정)

그러나 S&P 500은 2013년에 고점을 회복했습니다. 2009년 3월 바닥에서 매수한 투자자는 15년 만에 +700% 수익을 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세 번의 위기를 나란히 비교합니다

이어서 나머지 항목을 비교해봅시다

금융위기 후 미국 주식시장(S&P 500)은 항상 이전 고점을 회복했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면역 체계를 강화해 왔습니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여러 차례 경제 위기를 겪었지만, 매번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IMF 위기 후 외환보유액을 100배 이상 늘렸고, 카드대란 후 신용 관리 시스템을 강화했으며,

2008년 위기에서는 충분한 외환보유액 덕분에 IMF 때보다 훨씬 적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2020년 코로나 위기에서는 '동학개미 운동'이라는 전례 없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이 겪은 경제위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제도와 시스템이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1997년 IMF 외환위기입니다.

1997 IMF 외환위기 — 단기외채 과다 + 외환보유액 39억 달러 → 구제금융 → 금 모으기 운동 → 2001년 조기 상환

IMF 위기 후 불과 6년 만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카드사들이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하면서 신용불량자가 370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 경험은 한국의 개인 신용 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 카드대란 — 카드사 무분별 발급 → 신용불량자 370만 명 → 카드사 연쇄 부실 → 신용정보법 강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에도 전해졌습니다. 코스피는 54% 폭락하고 환율은 900원에서 1,57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 100배로 늘린 외환보유액과 한미 통화스왑 덕분에 1997년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2008 글로벌 금융위기 — 코스피 −54% / 환율 900→1,570원 → 한미 통화스왑 300억 달러 → 비교적 빠른 회복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전례 없는 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코스피가 35% 폭락하고 서킷브레이커가 2회 발동됐지만, 개인투자자들이 63조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 매도를 흡수하는 '동학개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2020 코로나 팬데믹 — 코스피 −35% → 서킷브레이커 2회 → 동학개미 63조원 순매수 → V자 반등 → 3,300 신고가

가장 최근인 2022년에는 강원도가 레고랜드 관련 채무보증을 거부하면서 채권시장 전체가 경색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50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긴급 투입하여 사태를 진화했으며, 이는 지방정부 신용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건이었습니다.

2022 레고랜드·흥국생명 사태 — 강원도 채무보증 거부 → 채권시장 경색 → 50조원 유동성 투입으로 진화

한국의 면역 체계 강화 과정 • 외환보유액: 1997년 39억 달러 → 2024년 4,150억 달러 (100배 이상) • 통화스왑 네트워크: 한미·한중·한일 등 양자 통화스왑 확보

• 은행 건전성: 2024년 BIS 자기자본비율 15.9% (국제 기준 8% 이상) • 금융감독: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상시 감시 체계 구축 동학개미 운동(2020)

코로나 폭락 때 개인투자자들이 63조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 매도를 흡수. 코스피는 1,439(2020.3) → 3,305(2021.1)로 1년 만에 +130% 반등.

1997년 한국 IMF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위기는 항상 같은 순서로 다가오고 항상 같은 방식으로 끝납니다

세 번의 대위기를 관통하는 공통 패턴이 있습니다. 금융위기는 항상 같은 5단계를 거쳐 진행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① 과잉 유동성 — 저금리 → 돈이 넘침 → 투자처를 찾아 이동

넘쳐나는 돈은 반드시 어딘가로 몰리게 됩니다. 1920년대에는 주식, 2000년대에는 부동산, 2020년대에는 암호화폐에 집중됐습니다.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번엔 다르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② 자산 버블 — 넘치는 돈이 특정 자산에 집중 → 가격 급등 → '이번엔 다르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담보 가치도 올라 더 많은 대출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레버리지가 극대화되면서 시스템 전체가 빚 위에 쌓이게 됩니다. 1929년의 10배 마진, 2008년의 30배 레버리지가 정확히 이 단계입니다.

③ 신용 팽창 — 자산 가격 상승 → 담보 가치 상승 → 더 많은 대출 가능 → 레버리지 극대화

빚으로 팽창한 시스템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금리 인상, 한 기업의 부도, 지정학적 위기 등 하나의 사건이 시장의 신뢰를 깨뜨리는 방아쇠 역할을 합니다.

④ 촉발 사건 — 금리 인상, 기업 부도, 지정학적 위기 등 하나의 사건이 불신을 촉발

불신이 퍼지면 모두가 동시에 팔려고 합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마진콜이 발생하고, 강제 매도가 추가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대공황, IMF, 리먼 사태 모두 이 패닉 단계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⑤ 패닉 매도 — 불신 확산 → 자산 투매 → 가격 하락 → 마진콜 → 추가 투매 악순환

세 번의 대위기 요약 1929 대공황: 10배 마진 거래 + 투기 광풍 → 다우 −89% → 25년 회복 1997 IMF: 단기외채 과다 + 외환보유액 부족 → 코스피 −60% → 4년 회복

2008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증권화 + 30배 레버리지 → S&P −53% → 5.5년 회복 공통 키워드: 과잉 레버리지 +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

위기 시 투자자의 생존 원칙 ✅ 패닉 매도 금지 — 바닥에서 팔면 손실이 확정됨 ✅ 분할 매수 — 현금이 있다면 공포 구간에서 나눠 사기 ✅ 적립식 투자(DCA) 유지 — 하락장에서 더 많은 주식을 살 수 있음

✅ 포트폴리오 점검 — 채권·현금 비중이 충분한지 확인 ❌ 레버리지 사용 금지 — 위기 시 레버리지는 파멸의 지름길 2009년 3월 바닥에서 S&P 500을 산 투자자는 2024년까지 +700% 수익.

위기 때 가장 중요한 것: 공포에 팔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 상위 10% 투자자

금융위기의 역사를 마스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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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정리

항목1929 대공황2008 금융위기
근본 원인과잉 투기 + 10배 마진 거래서브프라임 증권화 + 30배 레버리지
주가 최대 하락폭−89% (다우지수)−53% (S&P 500)
고점 회복 기간25년 (1954년 회복)5.5년 (2013년 회복)
항목1929 대공황2008 금융위기
정부 대응초기 방관 → 뉴딜 정책 (3년 후)즉각적 구제금융 TARP + 양적완화
핵심 교훈레버리지 규제 + 예금보험 탄생스트레스 테스트 + 시스템 리스크 감시

1997 IMF는 '단기외채 과다 + 외환보유액 부족'이 원인. 세 위기 모두 과잉 차입(레버리지)이 공통 키워드 — 2008년이 25년이 아닌 5.5년 만에 회복한 이유는 정부의 빠른 개입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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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자료

다이어그램: ill-inv-val-29
다이어그램: inv-scene-7-crash-timeline
다이어그램: inv-scene-7-dow-crash
다이어그램: inv-scene-7-crisis-pattern
다이어그램: ill-inv-val-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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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11929 대공황: 10배 레버리지 투기 → −89% 폭락. 예금보험·SEC 등 현대 금융제도의 탄생
  • 21997 IMF: 단기외채 과다 + 외환보유액 39억 달러 → 금 모으기 운동으로 극복. 이후 외환보유액 100배 확충
  • 32008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증권화 + 30배 레버리지 → 정부 즉각 개입으로 5.5년 만에 회복
  • 4모든 위기의 공통점: 과잉 레버리지 + '이번엔 다르다'. 위기 때 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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